[한마당-조용래] 무라하치부와 왕따

입력 2012-08-03 18:39

‘일본’ 하면 집단주의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렇게 된 원인은 여럿이겠으나 마을공동체의 오랜 관행인 ‘무라하치부(村八分)’도 빼놓을 수 없다. ‘무라’는 마을, ‘하치부’는 10개 중 8개를 뜻한다는 게 가장 그럴듯한 설이다.

무라하치부는 마을사람들이 접하는 열 가지 중요행사, 즉 성인식, 결혼, 출산, 병치레, 건축, 수해, 제사, 여행, 장례, 화재 중 장례와 화재를 뺀 나머지 여덟 가지는 모른 체 한다는 뜻이다. 또 그렇게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을 칭한다.

마을의 질서를 어지럽혔거나 유력자의 눈에 난 사람에 대한 징벌인 셈인데 두 가지 행사에 대해서는 예외를 둔 것이다. 방치했다가는 마을 전체에 화가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례의 경우 제때 사체를 처리하지 않으면 악취는 물론 자칫하면 전염병의 원인이 된다.

화재도 마찬가지다. 다닥다닥 붙은 가옥구조상 한 집에서 불이 나면 마을 전체로 옮겨 붙을 수도 있으니 밉지만 이웃들이 힘을 모아 꺼주기로 한 것이다. 무라하치부는 에도시대(1603∼1867)의 구습으로 이후 불법행위로 금지됐다.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본다거나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면 모두가 하는 만큼은 따라 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심정적으로까지 일소된 것은 아닌 듯하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지나치면 집단주의로 매몰되기 쉽다.

사실 어느 집단에서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라하치부의 사례가 흔히 발견된다. 대표적인 것이 청소년들 사이의 집단따돌림, 이른바 왕따다. 대놓고 따돌리는 왕따, 은근히 따돌리는 ‘은따’ 등이 이지메를 낳고 최악의 경우 자살사태까지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왕따가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이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직장인 30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3명에 1명 꼴로 “직장에서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생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고 하니 참 걱정이다.

세상 한가운데 독야청청하기란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고 소수자의 인권이 늘 사회문제로 제기되는 까닭이다. 현대판 무라하치부, 왕따의 만연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의 실종이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