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시에스타
입력 2012-08-02 18:50
잠은 휴식이요, 재충전이다. 인간은 에너지의 한계가 없는 슈퍼맨이 아니기에 반드시 잠을 자야 한다. 인생의 3분의 1 정도가 잠자는 시간이다. 잠을 자지 못하면 생체리듬이 깨져 불안감이 심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환각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중국 공안으로부터 6일간이나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을 당했을 때의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열대야에다 런던올림픽까지 겹쳐 밤잠을 설치는 요즘이다. 피로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낮잠에 의존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일반적으로 30분 정도의 낮잠은 피로를 풀어 일의 능률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구글과 나이키, 미국의 온라인 쇼핑몰 재포스닷컴 등 유명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낮잠을 허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윈스턴 처칠 등은 규칙적으로 낮잠을 잤다.
PIGS. 금융위기를 맞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을 뜻한다. 이들 나라에는 시에스타(siesta)가 있다. 시에스타는 점심식사를 한 뒤 낮잠을 자는 풍습이다. 유래는 불분명하다. 16세기 지배계층에 속한 이들이 낮잠을 즐긴 데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고,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때 두 개 이상의 직장에서 일해야 했던 가난한 근로자들이 낮 시간 잠깐 휴식을 취한 데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낮잠 시간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2시간가량 된다. 관공서와 은행, 방송국도 문을 닫는다.
스페인 국민들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낮잠을 즐긴다. 일터에서 집으로 가 가족들과 점심을 함께한 뒤 낮잠을 자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 오후 8시쯤 퇴근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2005년 일대 변화가 생겼다. 스페인 정부가 관공서의 시에스타를 전격 폐지한 것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일하는 시간이 달라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7년이 지난 최근엔 경기 부양을 위해 연면적 300㎡가 넘는 중대형 상점과 식당들의 영업시간을 지금보다 25%가량 늘리기로 했다. 하루 영업시간이 2∼3시간 늘어 많은 사람이 낮잠을 즐기지 못할 처지가 된 것이다. 대신 소비와 고용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유로존 재정위기의 주범은 스페인과 그리스, 이탈리아다. 이 때문에 세계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시에스타를 없애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한가하게 낮잠 잘 상황이 아니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