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다시 도진 ‘공천 헌금’ 고질병
입력 2012-08-02 18:43
검찰은 철저히 수사하고, 정치권은 자정노력 기울여야
공천 헌금 문제가 또 불거졌다. 지난 4·11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이었던 현기환 전 의원이 현영희 의원으로부터 비례대표 공천 청탁과 함께 3억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검찰이 최근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새누리당 부산 지역 의원이 공천 대가로 1억원을 당직자에게 건넨 정황도 포착해 내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진통일당에서도 공천심사위원인 김광식 대표비서실장 등이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50억원의 차입금 제공을 요구했고 비례대표 김영주 의원이 이를 약속했다는 취지의 중앙선관위 고발이 접수돼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
공천 헌금은 거의 선거 때마다 도지는 정치권의 고질병이다. 2008년 18대 총선 때는 친박연대에서 양정례 김노식 의원이 각각 10억원대 특별당비를 낸 사실이 밝혀져 당선이 취소됐고, 돈을 받은 서청원 대표가 구속됐다. 창조한국당에서도 이한정 비례대표 후보에게 6억원의 당채를 사게 해 문국현 대표가 의원직을 상실했고, 이 의원의 당선이 무효화됐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 동대문갑 지역위원장이었던 김희선 전 의원이 구의원 출마자들로부터 87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06년 지방선거 때는 새누리당이 후보들로부터 공천 헌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겪기도 했다.
여야 각 정당은 이 때문에 선거 때마다 앞다퉈 깨끗한 공천을 선언해 왔다. 하지만 매번 구두선에 그치고, 선거가 끝나면 정치권이 몸살을 앓는 일이 반복된다. 4·11 총선 때 당명까지 바꾸며 선거전에 나섰던 새누리당도 강도 높은 공천 개혁을 국민 앞에 약속했다.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이야말로 정치 쇄신의 첫 단추이자 쇄신의 화룡점정”이라며 깨끗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천을 추동했지만, 이번에도 잡음에 휘말렸다.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다가 접는 곤혹스러운 일을 언제까지 국민들이 되풀이하도록 만들 건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공천 헌금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좀먹는다. 선거절차의 공정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유권자의 선택권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후보 개인이 아니라 정당에 투표하는 비례대표의 경우는 유권자의 눈을 가려놓고 뒷전에서 공직을 사고파는 사기 행위와 다르지 않다. 비례대표 공천권 매매는 통합진보당을 분당 위기로 몰아넣은 경선 부정보다 더욱 심각한 사안이다. 이런 원시적인 정치 비리는 이제 단종돼야 마땅하다.
의혹 당사자들은 “근거 없는 음해”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니 당연히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검찰은 사실 여부를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비리의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철저하게 파헤쳐야 마땅하다. 이와 함께 정치권은 비위가 확인된 자를 가차 없이 퇴출시키고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