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說’경지 작가가 묻는 ‘ㄱ’의 의미

입력 2012-08-02 18:16


김정환 장편소설 ‘ㄱ자 수놓는 이야기’

괴력의 시인 혹은 전방위예술가라고 불리는 김정환(58)이 장편 ‘ㄱ자 수놓는 이야기’(문학동네)를 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들은 각각 어두컴컴한 지하 방에 갇혀 고문을 당하고 있다. 남자는 운동권 윗선으로서 지켜야 할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고통 받지만, 여자는 사랑했던 남자를 지키기 위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갖가지 고문을 견디고 있다. “막연하든 확실하든 사랑 감정이라기보다는, 어렴풋이 느껴지는 어떤 어둠의 운명을 그에게서 덜어주고 싶은 모성본능이 작용했던 것 같다. 물론 그때는 그가 지하당원 되기 전이고, 그는 결코 나를 꼬드기려 했던 것이 아니었지만, 어둠의 운명은 그때 시대의 표상이었다.”(여자-11쪽)

두 사람에게 가해지는 고문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의식은 희미해지지만 실낱같은 의식 속에서 그들은 과거의 추억과 그 추억이 부려놓고 간 그때의 공간과 시간을 경험한다. 고문 속에서 환상과 환청이 들리고 보이는 것이다. “학사주점 내부는 퀴퀴하고 맥주, 막걸리와, 생선 매운탕, 빈대떡 따위 퓨전이 어설펐지만, 착한 너는 다소곳이 학사주점 내부를 닮아가는 중이었는데도, 너로 하여 이국의 빛을 머금었다.”(남자-17쪽)

여자와 남자의 독백이 교차되는 가운데 또 이 소설이 품고 있는 고체성과 액체성의 세계가 이항대립의 질료로 부각된다. 강철조직, 지하당원, 유물론, 국가보안법, 자생적 마르크스주의자 집단, 고문 등의 단어가 국가주의와 독재를 연상케 하는 고체성이라면 사랑, 섹스, 연민, 엘피판, 19세기 꾸냥 같은 마음 상태 등의 단어는 액체성을 담보한다. 마치 바위를 뚫는 물방울들의 진실을 들려주겠다는 듯 액체성은 고체성을 휘감고 돈다.

고문에 점점 허물어지는 육체는 죽음의 속도를 가속한다. 시야가 희미해지고 의식 또한 안개처럼 뿌옇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이어줄 자식을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마침내 육체는 흐물거리고 감각은 사라진다. 고문이 와도 고문이 되지 못한다. 이제 두 사람에게 유일한 고문은 옆방에서 똑같은 고통과 공포와 슬픔을 느끼고 있을 ‘당신’이라는 존재뿐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에게 놓인 삶과 죽음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이때 불현듯 등장하는 것이 ‘ㄱ’이다. “이 강한 ‘ㄱ’의 중력. 부메랑 모양이자 소리인. 목표와 겨냥이 없는. 던지면 날아가다 되돌아오는 부메랑, 소리와 모양의. 당신. 이 누추한, 내가 되어가고 있는 ‘ㄱ’은, 당신도 나와 마찬가지 생각이라는 건가, 내가 당신의 붉은 꽃으로 확 번지며 사라져버리거나, 붉은 꽃으로 확 저질러지며 사라져버려야 했었다는 건가?”(153쪽)

‘ㄱ’의 의미는 무엇일까. “글자는 정말 무늬구나. 이제는 뜻이 뭉개진. 아니 그 뭉개짐이 바로 무늬”(150쪽)라는 구절에 단서가 있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ㄱ’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김정환은 ‘작가의 말’에 썼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살아남은 이야기가 문학의 자연이라면 이런, 죽음을 스스로 겪는 방식으로 죽음을 위로하는 이 제의는, 말 그대로 문학의, 이야기의, 인위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