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베테랑 검객 생애 가장 뜻깊은 승리, 아람이에 메달 바치려… 회심의 역습 최병철 銅
입력 2012-08-01 19:59
2세트 종료 44초 전. 한국 남자 펜싱의 ‘맏형’ 최병철(31·화성시청)이 피스트(경기장 무대)를 내달려 안드레아 발디니(이탈리아)의 목을 검으로 쿡 찌르고 지나갔다. 전광판 스코어는 14-11로 바뀌었다. 최병철의 3점 차 리드. 1점만 더 따면 동메달이다. 관중석엔 ‘고무줄 1초’ 때문에 여자 에페 결승전에 오르지 못한 신아람(26·계룡시청)이 가슴을 졸이며 응원하고 있었다. 갑자기 최병철이 흔들렸다. 잇따라 3점을 허용해 14-14 동점이 되고 말았다. 이탈리아 관중이 발을 구르며 내지르는 함성에 경기장이 떠나갈 듯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시작된 3세트. 아픈 발목으로 통통 뛰던 최병철은 22초 만에 콩트라타크(역습)를 성공시켜 결승점을 뽑아냈다. 비디오 판독을 거쳐 승리가 확정되자 최병철은 그제야 맘껏 포효했다.
최병철의 동메달은 2000년 시드니대회의 김영호(남자 플뢰레 금메달), 이상기(남자 에페 동메달)에 이어 12년 만에 남자 펜싱에서 나온 메달이어서 기쁨이 더했다.
3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엑셀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남자 플뢰레 개인전 3∼4위전에서 발디니를 꺾고 동메달을 목에 건 최병철은 부상과 체력 고갈로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신아람부터 챙겼다.
“자꾸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혼자 분을 삭이려는데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아람이는 결과가 어떻게 됐든 승리한 것이고, 어린 나이에 좋은 선수를 꺾은 것이니 앞으로도 운이 트일 겁니다.” 울분도 토했다. “내가 꼬마와 경기를 해도 1초에 네 번의 공격은 불가능해요.”
2001년 11월 처음 태극마크를 단 최병철은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한 지 11년째를 맞은 베테랑 검객이다. 2008년 베이징대회 때 개인전 9위에 그쳤던 그는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홍콩의 청쉬린을 치열한 접전 끝에 15대 14로 꺾고 정상에 올라 한국 남자 펜싱의 대들보로 자리 잡았다.
최병철은 이번 대회에서 ‘괴짜 검객’이란 별명을 얻었다. 예선전을 치르며 보여 준 ‘끼’ 때문이었다. 키 1m73㎝, 몸무게 70㎏으로 체구가 작은 최병철은 자기보다 훨씬 큰 상대를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다 제풀에 쓰러져 피스트를 데굴데굴 굴렀고, 등 뒤로 검을 돌려 상대를 찔러 포인트를 따냈다. 한 발을 든 채 공격을 했고 심지어 누워서조차 검을 휘두르기도 했다. 관중들은 그의 ‘닥공 펜싱’에 탄성을 내질렀고, ‘변칙 펜싱’엔 웃음을 터뜨렸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