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이 어디… 뜀뛰기하는 이화학당 며느리 안돼!”… 120년전 외국인이 본 여성스포츠
입력 2012-08-01 22:11
런던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여자 선수들의 맹활약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개화기인 1892년 파란 눈의 외국인이 본 한국 여성 스포츠사가 소개돼 화제다.
이화여대는 1일 공식 블로그를 통해 우리나라 신(新) 여성들의 스포츠사를 조명했다. 블로그에 따르면 1892년 이화학당 제3대 당장으로 취임한 조세핀 오필리아 페인(Josephine Ophelia Paine)이 본 당시 한국은 유교적 분위기가 강해 여학생들이 운동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당시 여학생들은 면역력과 체력이 약해 콜레라 같은 전염병에 쉽게 잘 걸리고 이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는 사례가 많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페인 선생은 이화학당 여학생들에게 체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보폭은 여학생의 발 길이 만큼으로 제한했고 팔의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본 부모들은 자녀를 학당에서 빼내느라 분주했고, 심지어 “이화학당에 다닌 여학생은 며느리로 삼지 않겠다”는 말도 나왔다고 블로그는 전했다.
1910년대가 돼서야 여학생들이 농구와 정구 등 ‘뜀뛰기’하는 운동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 블로그에서는 ‘어깨허리’ 치마 사진을 소개했다. 당시 여학생들이 치마가 흘러내릴까 빨리 달릴 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진네트 월터 선생이 어깨에 조끼형 끈을 단 치마를 고안해낸 것이다. 현재의 한복 치마모양은 이때 ‘어깨허리’ 치마가 보급된 결과다.
블로그는 또 1920년대 반바지를 입고 운동하는 여학생들의 모습도 공개했다. 당시 저고리에 항아리 모양의 반바지를 입은 학생들 중에는 맨다리를 드러내는 것이 수치스럽다고 여겨 수건으로 다리를 감싼 사람도 있었다.
1934년 사진에는 반바지를 당당하게 입고 농구공을 배경으로 찍은 여성들의 모습이 담겼다. 이후 이화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 졸업반끼리 정구 시합을 하는 등 스포츠 활동이 활발해졌고 1945년에는 이화전문학교에 국내 최초의 체육학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