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석 국장기자의 London Eye] 안마 수준 보안 검색에 기자는 죽을 맛

입력 2012-08-01 19:07


도시국가 간 전쟁이 잦았던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픽 기간에는 정전이 선포됐다. 올림픽 개시 3개월 전 전령들이 그리스 도시국가와 인근 속국들에 파견돼 공식적인 의식을 통해 정전을 알렸고 전 그리스 시민들을 올림픽에 초대했다. 올림픽 기간 중 무기 사용은 금지됐고 올림픽에 참가하는 사람은 아무런 제한 없이 그리스를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 왕 필립은 올림픽 기간 중 자신의 병사가 올림픽 순례자를 약탈했다는 이유로 사과하고 벌금을 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와 이 같은 고대 올림픽의 평화 정신은 많이 퇴색됐다. 급기야는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장으로서 올림픽이 주요 타깃이 돼 버렸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어 단번에 그들의 주장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근대 올림픽에서 가장 참혹했던 테러는 1972년 뮌헨올림픽 때다. 당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8명이 선수촌에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들을 인질로 삼았다. 이은 진압작전에 선수들을 포함해 17명이 사망한 올림픽사상 최악의 참사가 벌어졌다.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여객기 폭발 테러가 있었고, 96년 애틀랜타올림픽 기간 중에도 폭발물이 터져 2명이 사망했다. 고대인들조차 정전을 선포했던 올림픽에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는 현대인들은 테러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혹 있을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영국정부는 역대 최고의 보안태세를 갖췄다. 약 1조원에 가까운 보안예산을 책정했고 민간 보안요원들을 믿지 못해 군병력 1만3500명까지 동원했다. 심지어 FBI 요원 500명을 포함해 미국에서 1000명 이상의 보안요원이 도움을 주러 건너왔다.

아무리 보안을 위해서라지만 경기장과 메인프레스센터를 빈번하게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기자들의 불편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국제선 비행기를 탈 때 받는 공항 검색 이상이다. 줄을 서서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주머니의 휴대물품을 다 내놔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컴퓨터 가방 속 여러 전자기기들, 와이파이 변환기라든지 MP3, 충전기 등은 보안요원들이 일일이 만져보며 검색한다. 심지어 그들이 나눠준 비옷 안에 뭐가 들었는지 이리저리 만지며 살핀다. 기자의 컴퓨터가 최고 브랜드라고 농담도 건네면서 어떨 때는 거의 고급 안마 수준의 몸수색도 자행한다. 이런 일을 하루에도 몇 차례 겪고 나면 온갖 정나미가 떨어진다.

영국은 18세기 이후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나라 중의 하나다. 그런 만큼 보안에 관한 노하우도 최고일 터. 하지만 그 와중에 선량한 다수는 이런저런 ‘올림픽 피로감’에 젖는다.

런던=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