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배드민턴 ‘고의 패배’ 4개팀 모두 실격… 사상 초유

입력 2012-08-02 00:30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린다. 승부를 예측 못하는 것이 바로 스포츠의 묘미 중 하나다. 스포츠맨십을 지키는 것도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배드민턴 대표팀이 중국의 ‘져주기 꼼수’에 똑같이 꼼수를 시도하다 실격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고의 패배로 실격 처리되는 것은 올림픽 사상 초유의 일이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은 1일 청문회를 연 뒤 배드민턴 여자복식 A조의 왕샤올리-위양(중국) 조와 정경은-김하나(한국) 조, C조의 하정은-김민정(한국) 조, 멜리아나 자우하리-그레시아 폴리(인도네시아) 조가 유리한 대진을 위해 고의로 패배를 자초했다며 모두 실격 처리했다. 토마스 룬드 BWF 사무총장은 청문회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실격 처분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경기에 나서는 행위’와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는 행동’을 금지하는 배드민턴연맹 규정에 따라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바로 이의를 신청했다.

이번 고의 패배 스캔들은 지난 31일 벌어진 여자복식 조별리그 A조 최종전에서 촉발됐다. 세계랭킹 1위인 왕샤올리-위양 조는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성의 없는 플레이를 펼친 끝에 세계랭킹 8위인 한국의 정경은-김하나 조에 1대 2로 졌다. 세계랭킹 2위인 자국의 톈칭-자오윈레이 조와 준결승에서 만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경기는 다음 경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C조에서 하정은-김민정(한국) 조와 멜리아나 자우하리-그레시아 폴리 조가 유리한 대진을 위해 ‘져주기 게임’을 펼친 끝에 한국 팀이 2대 1로 이겼다.

실망한 관중들은 선수들에게 야유를 퍼부었고, 승부조작 근절에 강력한 의지를 피력해 온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마침 문제의 경기를 직접 관람했다. 로게 위원장은 BWF에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강력히 지적하며 이번 대회에서 퇴출을 요구했고, BWF는 퇴출보다 한 단계 낮은 실격으로 처리했다.

성한국 한국 배드민턴 감독은 “한국의 여자복식 2개조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점은 인정하지만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것은 중국”이라며 “중국 선수들이 먼저 져주기 게임을 하는 바람에 우리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성 감독은 정경은-김하나 조와 맞서는 중국 선수들의 경기 자세가 올림픽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조별리그가 도입된 배드민턴은 조 1·2위가 정해진 상태에서 8강 토너먼트를 치르게 되기 때문에 8강 이후 대진표에서 유리한 위치를 고르기 위한 져주기 게임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중국과 한국 모두를 비판하고 나섰다. 데일리메일은 “배드민턴 여자복식 경기가 중국과 한국의 져주기 게임으로 인해 코미디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또 “관객의 야유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형편없는 경기를 펼친 그들이 하고 있었던 건 배드민턴이 아니라 ‘배드-민턴(Bad-minton)’”이라고 꼬집는 외신들도 많았다.

장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