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손기웅] 힘을 지렛대로 남북관계 풀자

입력 2012-08-01 22:14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처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되는 방략을 적극 활용해야”

기이한 일이다.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는 서독과 교류협력을 하면 서독의 자유민주주의 사조가 동독주민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서독과의 교류협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정치범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국민인 동독 주민들을 서독과의 협상을 통해 몰래 서독으로 넘겨주기까지 했다.

이유는 돈이다. 통치와 권력 유지를 위해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서독색으로 물들 수 있다는 우려감 속에서도 서독과의 거래관계를 유지했다. 서독과 문화협정, 과학기술협정, 방송협정 등의 체결에도 응했다. 돈을 받고 자국민을 서독에 넘기는 행위가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치범 석방거래’를 계속했다. 시간이 가면서 더욱 확대할 것을 서독에 요구했고, 호네커가 쫓겨나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다음 달까지도 돈을 받고 자국민을 팔았다.

더욱 기이한 일이 있다. 동독의 맹방이었던 북한은 누구보다 교류협력에 의한 서독의 동독에 대한 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과 김정일은 우리에게 금강산과 개성이란 거대한 땅덩어리를 교류협력이란 이름으로 내 놓았다. 무너질 당시 공산권에서 가장 앞선 경제강국이었던 동독이 서독에 영향을 받은 자국민에 의해 맥없이 사라지는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던 북한이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문을 잠근 것이 아니라, 교류협력의 손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역시 권력의 유지와 통치를 위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상종 못할 대상이라고 현 정부를 그렇게 비난하면서도 개성공단의 문을 닫기는커녕 좀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고,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협박·회유하고 있다.

북한은 전시 상황이다. 남한과 미국의 소위 ‘대북압살정책’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전국민 총동원령을 내리고 전시체제를 운영 중이다. 그 연장선에서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를 포격하였다. 전시 상태에서 무력사용이란 전혀 거리낄 게 없는 자위적 행위라 주장하고 실행하고 있다. 벼랑에 몰리고 더 악화될 수 없이 어려운 국내적 상황에서 북한이 우리와 달리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무력도발이다. 그것이 어찌 보면 잃을 게 없는 북한이 가진 힘이다.

우리가 가진 힘은 경제력이다. 북한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앞선 경제력에 북한은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남북교류협력을 통해 돈을 벌고 그것을 권력 유지에 활용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남북 간 경제협력이 과연 북한당국의 체제유지와 강화에만 도움이 되는 것인가? 경제협력과 사회문화 영역에서의 교류협력은 방법과 형태에 따라 북한주민의 눈과 귀를 뜨게 하고, 민주화되고 자유로운 우리사회를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5만여명과 그 몇 배의 가족이다. 그들이 대한민국을 체험하고 있다. 금강산관광객의 자유로운 모습이 북한주민에게 변화의 마음을 품게 할 수도 있다. 아무리 대한민국으로부터 오는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해도 개인의 생각과 판단까지 막을 수는 없다.

우리가 가진 힘, 그것을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에 활용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남북한의 주민이 합의할 때 가능하다. 북한주민이 동의할 때 실현될 수 있다. 그 영광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북한주민들이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고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우리의 힘, 우리의 경제력을 남북관계에 활용해야 한다.

북한의 무력도발에 단호히 대응하는 다른 한편으로, 국가성장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남북관계의 상황을 만들어 가기 위해 우리가 가진 힘을 최대한 창조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현 정부, 그리고 향후 5년간 국가를 이끌고자 뛰고 있는 지도자들이 이를 고민하고 국민들을 이끌어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스스로 묶어버려서는 안 된다.

손기웅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