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식반응 자제 ‘만만디 전략’… 美 중재자 역할 주목

입력 2012-08-01 22:21


‘김영환 고문’ 정부 강경대응 선언 이후 韓·中 관계 전망

북한인권전문가 김영환(49)씨 고문 피해를 둘러싼 한·중 외교 갈등이 장기전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강경 대응책을 내놓으며 공이 중국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중국이 특유의 ‘만만디(慢慢的·‘천천히’라는 뜻의 중국어)’ 전략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1일 “시한을 두면 오히려 중국에 거기까지 버티면 된다는 신호를 주는 셈”이라며 “지금은 (중국이 반응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날 대변인 성명에서 중국을 향해 ‘진상조사, 사과 및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등 사태 해결의 3대 조건을 공식화했다. 또 천하이 주한 중국대사 대리를 불러 이에 대한 중국의 성실한 답변을 재차 촉구했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도 비상시국이란 판단에서 여름휴가 일정을 축소했다.

중국의 공식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인터넷 홈페이지 공식논평 코너를 이용하지 않고 질의하는 언론사에 개별적으로 고문 사실을 부인하는 비공식 대응에 나서고 있을 뿐이다. 천 대사 대리도 정부 당국자에게 “본국에서 입장을 전해 온 것이 없다”고 전했다.

당분간 양국이 추가 행동을 자제한 채 팽팽한 신경전을 펼칠 공산이 커진 상황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중국 내 한국인 수감자 전원에 대한 영사면담을 진행하는 것 외에 중국을 압박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중국 정부도 고문의 사실 여부를 이른 시일 내에 우리 정부에 통보할 경우 얻을 이득이 거의 없다고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변수는 북한과 미국이다. 북한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전날 성명을 내고 김씨를 처단 대상자로 지목했다. 이에 김씨는 “북한 민주화 활동이 위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중국에 유일하게 1대 1로 대응할 힘이 있는 미국이 이 문제에 어느 정도 개입할지도 주목된다. 기본적으로 한반도 주변의 긴장 국면을 원치 않는 미국이 물밑으로 한·중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당국자는 “현재로선 미국이 어떤 역할을 맡고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동북아 외교가 최대 위기를 맞은 현 상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어제 주한 중국대사 대리와 일본 총괄공사(방위백서 발간 항의 차원)가 동시에 초치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며 “현 대중·대일 외교가 얼마나 난관에 봉착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말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