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겨자씨 헌금
입력 2012-08-01 18:14
로마서 15장 27절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오순절에 임한 성령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 운명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6절에는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라고 쓰여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이런 배경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로마교회와 예루살렘교회는 같은 성령을 나누어 가짐으로 한 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나누어 가진 영원한 새 가족들이 물질을 함께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당시 로마교회는 예루살렘교회가 극심한 가뭄으로 경제적인 고통을 함께 참여하여 극복해 나가자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요구되어지는 동일한 말씀입니다. 세례를 받고 교회의 지체가 되면 교회의 모든 사람과 성령을 나누어 마신 가족이 되고, 성령을 나누어 마신 사람들이 물질도 함께 나누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가운데 지체들의 경제적인 고통에 종종 무관심한 교회도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교회에 대한 정체성을 모르기 때문이며, 또 다른 하나는 성도들이 서로 나누었을 경우 시기와 질투로 인해 분열과 다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입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회입니다. 성경에서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는 것은 이방인의 과부와 고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의 과부와 고아를 뜻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경제적 약자들을 돌보는 것은 교회 밖의 사람보다 교회 안의 사람을 먼저 돌보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교회 안의 경제적인 약자를 돌보는 것을 구제라 하지 않고 나눔이라고 해야 합니다. 즉 나눔은 교회의 중요한 본질입니다. 사람의 욕구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에 대한 욕구일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샬롬’이라고 인사하고 우리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는 것은 다 안전에 대한 갈망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천국이 임하게 하시는 것은 교회라는 유기체 공동체를 통하여 개인이 확보하지 못하는 안전에 대한 삶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사야 61장 1∼2절의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라는 예언대로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경제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지체들이나 갑작스럽게 어려움을 당한 지체를 위하여 ‘겨자씨 헌금’을 수시로 합니다. 회생하려는 의지와 방법을 가지고 있는 지체들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며 나누기 위하여 ‘겨자씨 헌금’을 합니다. 지체를 위한 사랑의 마음은 겨자씨라는 특별 헌금에 더 담기기 때문에 ‘겨자씨 헌금’을 특별헌금으로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모일 때마다 모인 헌금을 주중에 가난한 지체에게 나누어 주는 예배를 드렸습니다(히 13:15∼16).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가난한 지체들에게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기도만 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약 2:14∼17).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공동체를 통해 충족됨으로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게 하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겨자씨 헌금을 통해 우리시대 교회의 본질을 세우고 하늘의 평강이 우리에게 실제화되길 기대합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 이 땅 가운데서도 천국을 누리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김종웅 목사(용인 쉼과회복이있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