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검찰 출두] “버틸수록 黨에 불리… 털고가자” 허 찌른 기습 행보
입력 2012-08-01 00:18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31일 예상을 깨고 검찰에 기습 출두하며 밝힌 이유는 “당과 국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면에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 체포동의안과 방탄국회 논란을 둘러싼 ‘정치 9단’과 검찰의 수(手) 싸움이 여의도와 서초동을 오가며 벌어지고 있다.
◇자진 출두 왜?=우원식 원내대변인은 “당 내부에서도 몰랐던 고독한 결정”이라고 했다. 그는 “(박 원내대표가) 시간이 갈수록 당에 부담이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전했다. 계속 버틸 경우 8월 임시국회가 ‘박지원 방탄국회’로 전락하고,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 등 굵직한 대선 이슈가 묻혀버리며, 대선후보 경선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체포영장에 적시된 수수 금액이 8000만원뿐인 점도 작용한 듯하다. 불법 정치자금은 통상 1억원 이상 받아야 구속되곤 했다.
하지만 속사정은 훨씬 복잡하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의원총회에서 박지원 체포동의안을 가결시키기로 당론을 정했다. 명분은 “검찰 조사를 받은 정두언 의원과 조사 자체를 거부하는 박 원내대표는 사안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체포동의안은 가결될 가능성이 높았고, 부결되더라도 8월 임시국회를 열려면 ‘방탄’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 박 원내대표는 자진 출두를 결심했다. 그 결과 ‘소환 조사’ 목적이었던 체포동의안은 필요성이 사라져 여야 합의로 사실상 폐기됐다. 검찰은 ‘회기 중 국회의원’으로 불체포 특권을 가진 박 원내대표를 조사 후 귀가시켜야 했다. 이제 그를 구속하려면 다시 ‘구속을 위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통과돼야 한다.
여기서 박 원내대표가 얻은 것은 8월 임시국회를 열더라도 ‘방탄국회가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이다. 정 의원과 마찬가지로 검찰 조사를 받았으니 민생을 위한 국회를 열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은 박 원내대표 출두 직후 ‘8월 4일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당은 8월 국회에서 특검과 국정조사를 추진해 정국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새누리당 이상득 전 의원 사건을 비롯해 여당과 검찰이 어물쩍 넘어가려 했던 각종 비리를 낱낱이 파헤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임시국회에서 야당 원내대표 구속을 위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기는 쉽지 않다.
새누리당은 ‘허를 찔린’ 표정이다. 홍일표 원내대변인은 “그래도(박 원내대표가 검찰 조사를 받았더라도) 8월 국회는 방탄이다”라고 주장해야 했다. 검찰이 8월 국회에 끝내 박 원내대표 체포동의안을 제출한다면 정 의원의 체포동의안도 함께 제출할 가능성이 높아 새누리당의 셈법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박 원내대표가 여전히 긴장하고 있는 변수는 검찰 조사의 수위일 것으로 보인다. 체포영장에 명시된 8000만원 외에 추가 혐의가 공개될 경우 정치권과 국민 여론이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 검찰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건 이런 ‘히든카드’를 확보했기 때문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선 정국에 미칠 영향=박 원내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는 대선 정국을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당내에서는 “박 원내대표가 유죄면 민주당 대선은 그걸로 끝”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럴 경우 대선 국면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민주당의 의존도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주도권은 급속하게 민주당으로 쏠릴 수 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