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고문사태 파장] 정부, 강경대응 배경… 한·일정보보호협정 전철 피하기 포석
입력 2012-07-31 22:13
김영환씨가 상세한 고문 상황을 폭로한 데 이어 우리 정부도 31일 적극 대응 의사를 밝히면서 김씨 사건이 국제사회에 공론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중국을 항해 ‘이례적으로’ 강경 모드를 택한 배경에는 한·일 정보보호협정 파문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중도 엿보인다.
김영환 석방대책위원회 최홍재 대변인은 이날 “중국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유엔 등 국제기구에 문제를 제기하고 중국에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며 “정부가 도와준다면 적극 환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제기구 등 다자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의 수’를 몇 가지 상정해 놓고 검토에 착수했다. 우선 중국이 1988년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 만큼 국제사회에 이를 이행토록 촉구하는 방안이 있다. 하지만 중국이 버틸 경우 뾰족한 수가 없다. 현재로서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김씨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석방대책위도 이미 지난 5월 특별청원 형식으로 유엔 인권이사회에 이 문제를 제기해 놓은 상태다. 조태영 대변인은 “(석방대책위가 제기한 청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관련 당사자를 만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중국 정부 압박에 나선 것은 김씨가 당한 고문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정부의 미온적 대응에 대한 비판 여론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외교적 득실을 따지기보다 당장 악화된 여론을 돌려놓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전날 하금열 대통령실장이 국회에 출석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할 생각”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정부는 중국이 고문 사실을 인정할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 아래 ‘장기전’도 대비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대응 수위를 높이면서 중국과의 갈등은 이미 표면화됐다. 자국의 인권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공론화되는 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중국이기에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가 이슈화될 경우 양국 간 격렬한 외교적 마찰이 예상된다.
물론 양국 모두 부담은 존재한다. 가해자 격인 중국은 물론이고, 우리 정부도 중국 정부의 잘못을 국제사회에 설득해야 하는데 김씨 고문의 증거가 마땅치 않다는 게 고민이다. 이 때문에 양국 간에 사태 해결을 위한 물밑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현재 이규형 주중 대사가 중국 정부 고위관계자 면담을 신청해 놓은 상태지만 아직 중국 측은 가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