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4년을 삼켜버린 ‘1초’… 신아람과 함께 5천만이 찔렸다

입력 2012-08-01 01:28


무슨 음모가 있는 것일까. 1점만 따면 승부가 나는 1분 서든데스 연장전에서 신아람(26·계룡시청)은 6차례나 공격을 시도했지만 상대와 동시(25분의 1초 이내)에 찌른 것으로 인정돼 점수가 올라가지 않았다. 마지막 1초가 남은 상황에서 3차례의 겨루기가 있었지만 시간은 요지부동이었다. 전광판의 시계는 고장난 듯 1초 전 상태로 끝까지 멈춰 있었다. 유럽 펜싱 강국들의 뻔뻔스런 판정 횡포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결국 한국은 개막식 이후 수영, 유도에 이어 펜싱까지 사흘 연속 납득할 수 없는 심판 판정의 희생양이 됐다.

3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엑셀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펜싱 에페 여자 개인 4강전. 세계랭킹 12위인 신아람은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브리타 하이데만(독일)과 연장 접전을 펼쳤으나 이해할 수 없는 판정으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5-5로 비긴 상황에서 1분간의 연장전에 들어간 신아람은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내면 이기는 어드밴티지를 얻은 상황이었다. 양 선수가 점수를 내지 못해 1초만 지나면 신아람의 승리가 결정되는 때, 하이데만이 3차례의 겨루기에서 마지막 4번째 팡트(찌르기)로 득점을 얻었다. 하지만 1초의 시간은 계속 그 자리에 멈춰 있었고 코칭스태프는 거세게 항의했다. 경기 종료 4초에서 1초로 바뀌는 순간 허용한 1차 팡트부터 총 4차례 찌르기 공격을 했는데 왜 시간은 흐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신아람은 억울한 판정에 펑펑 울었고, 한국팀의 항의를 받아들인 심판진은 격론을 벌였다. 30여분이 흘렀지만 그들의 논쟁은 계속됐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모습은 초라해보였다. 결국 판정은 번복되지 않아 하이데만의 승리가 선언됐다. 국제펜싱연맹도 31일 한국 선수단의 이의신청을 “근거 없다”며 기각했다.

신아람은 억울함에 지친 듯 한동안 피스트를 내려오지 못했다. 한참 뒤 두 명의 관계자가 눈물을 쏟아내는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곳곳에서 “노(NO)”라는 관중의 외침과 함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1시간 넘게 경기가 지연됐지만 신아람을 책망하는 관중은 없었다.

올림픽 사상 가장 추악했던 판정 시비는 1시간에 걸쳐 끝났지만 진실 캐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3-4위전에서 패한 뒤 공동취재구역에 나온 신아람은 “(준결승은) 분명 내가 이긴 경기”라면서 “펜싱에 이런 억울한 경우가 많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가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 큰 경기에서 나올지 몰랐다”고 분함을 삭히지 못했다.

“비싼 티켓을 사서 관중이 들어왔는데 나로 인해 시간을 많이 낭비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한 신아람은 하이데만에 비하면 진짜 스포츠맨이었다. 하이데만은 인터뷰에서 “시계가 1초가 남은 것으로 돼 있다면 1.99초가 남은 것일 수도 있다”며 끝까지 변명만 늘어놨다. 부당한 판정 덕에 팔짝팔짝 뛰었던 하이데만은 결승에서 우크라아나의 야나 셰미야키나에 져 은메달에 그쳤다.

런던=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