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억울한 옥살이를 하더라도
입력 2012-07-31 18:01
창세기 39장 7∼23절
야곱은 아들 요셉을 특별히 총애했습니다. 이 때문에 요셉은 17세의 나이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왕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노예가 됩니다. 그러나 요셉은 절망하지 않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믿음으로 성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그의 범사를 형통케 하셨습니다. 10년 뒤 보디발 장군은 요셉을 신뢰해 집 전체를 책임지는 가정 총무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꽃이 막 피어나는 시점에서 고린도전서 10장 12절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처럼 보디발의 아내는 27세의 혈기왕성한 청년 요셉을 성적으로 집요하게 유혹했습니다. 요셉은 과연 이 시험을 어떻게 물리쳤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요셉처럼 풍랑을 이겨내는 지혜를 얻게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 처음부터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가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요셉은 ‘날마다’ 동침을 청해오는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주인이 자신에게 맡긴 한계의 선을 넘어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늘 하나님의 임재 의식 속에서 생활했습니다. 보디발 아내의 유혹에 요셉이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이처럼 그는 거룩하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기에 단호히 죄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유혹의 자리를 피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그는 동침을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보디발의 아내와 함께 있게 될 상황 자체를 피했습니다. 유혹의 자리에 머물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변명은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시 1:1).
셋째, 고난이 두려워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결단코 악을 범치 않으리라’는 믿음을 지킨 대가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인생 막다른 곳까지 내려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실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드디어 감옥 속에서도 함께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게다가 감옥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들어쓰시고자 계획하신 하나님의 학교였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인간관계나 업무상 피하기 힘든 자리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어쩔 수 없어서’ 내지는 ‘딱 한번’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다 보면 크리스천의 정체성은 무색하게 됩니다. 결국 성결의 성벽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처럼 죄의 유혹은 처음부터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유혹의 환경을 피해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는 길에서 겪는 고난 속에는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오묘한 계획이 숨겨져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즐겨 쓴 말인 코람데오(Coram Deo·‘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의 라틴어)의 믿음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리시길 축원합니다.
김덕원 목사 (대전그리스도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