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전기봉 5∼8시간 고문… 中 김영환씨 ‘고문의 재구성’
입력 2012-07-31 01:14
김영환씨가 30일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밝힌 중국 당국의 고문 행태는 충격적이다. 고문 전 김씨 얼굴에 복면을 씌우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심전도와 혈압 검사까지 한 것을 볼 때 중국 당국이 치밀한 계획 아래 고문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 귀국 뒤 정부가 “(공개 수위를) 신중하게 판단해 달라”고 김씨에게 당부한 사실도 드러났다.
◇‘고문으로 단련된’ 김씨도 못 견뎠다=김씨는 지난 3월 29일 영문도 모른 채 다롄에서 체포된 뒤 다음날 오전 단둥 국가안전국(우리의 국가정보원)으로 옮겨졌다. 김씨가 영사 접견 등을 요구하면서 묵비권을 행사하자 중국 당국은 13일째인 4월 10일쯤부터 7일간 연속으로 잠을 재우지 않는 가혹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 15일 밤부터 전기고문이 시작됐다. 김씨는 “고문 전 얼굴에 복면을 쓴 채 심전도·혈압 검사 등을 받았다”며 “공안이 상부로부터 허가를 받고 고문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50㎝ 길이의 전기봉을 이용한 고문은 5시간에서 8시간 정도 계속됐다. 전기봉의 끝은 4㎝였으며 그중 1㎝ 정도에 전류가 흘렀다. 이어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리는 구타가 이어졌다. 그는 맞을 때마다 얼굴과 몸 전체에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30분에서 1시간가량 구타가 계속되면서 얼굴에 상처가 심해지자 중국 공안은 다시 전기고문을 했다. 이런 물리적인 압박은 15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12시간 정도 계속됐다. 창문을 가려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지만 건물 밖의 어렴풋한 불빛을 볼 때 대략 16일 새벽 5시쯤에야 끝난 것 같다고 김씨는 말했다.
이런 고문과 가혹행위로 그는 결국 그동안 지켜온 침묵을 깼다. 공안은 물리적 압박이 끝나기 전 2~3시간 동안 고문 없이 조사하는 것으로 하자면서 문서를 내밀어 서명할 것을 종용했다. 그는 그 후 심한 물리적 위해는 받지 않았지만 공안의 조사가 끝난 4월 28일까지 수갑을 찬 채 의자에서 앉아 잠을 잘 것을 강요당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80년대 운동권 출신인 김씨가 예전 우리의 안기부에서 당했던 만큼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 문제로 비화될 전망=정부는 김씨가 고문을 당했다고 털어놓은 6월 11일 영사면담 이후 9차례 중국 정부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중국 정부는 “사실무근”이라고 답변해 왔다. 정부는 10번째 확인 요청을 해놓은 상태지만 중국 정부가 순순히 이를 인정할 가능성은 낮다. 정부는 지금까지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는 소극적 입장이었다. 하지만 김씨가 스스로 상세한 고문 내용을 밝히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장 김씨 문제의 국제기구 제소를 검토해 온 북한인권 단체, 탈북자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대한 비판적 국민 여론도 비등해질 전망이다.
한·일 정보보호협정처럼 거센 후폭풍도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 20일 귀국한 김씨로부터 상세한 고문 내용을 듣고도 이를 공론화하기보다 조용한 해결에 주력했다. 신속한 영사 면담을 하지 못해 김씨 몸에 고문 증거가 남아있던 시기에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김씨도 “1차 영사 면담일인 4월 26일이면 제가 잡히고 29일째 되는 날인데 왜 그 전에 영사 면담을 하러 오지 않았는지 그 부분이 납득이 안 된다”고 정부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