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기선] 지역주의와 선거제도
입력 2012-07-30 18:58
19대 국회 개원 후 2개월간 무려 38개의 선거법 개정법률안이 제출됐다. 투표율 제고, 재외선거, 선거비용 등 내용도 다양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대선을 넘어 우리나라 선거가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과제가 있다. 바로 지역주의 완화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지역주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1987년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래 새누리당과 그 전신 정당들이 호남에서 얻은 국회 의석은 단 3석에 불과하고, 민주통합당과 그 전신 정당들이 영남에서 얻은 의석은 9석에 그친다. 대선 시 양대 정당이 호남 또는 영남에서 얻은 득표율도 전체 득표율에 크게 못 미친다. 아마도 이번 대선에서도 지역주의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역주의는 한 정당이 특정 지역의 정치권력을 독점하게 됨으로써 지역발전, 나아가 국민통합과 국가의 균형적 발전을 저해하는 등 심각한 폐해를 낳는다. 그동안 정치권과 학계 등에서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선거제도 개선안을 제시했으나 정치적 이해 대립으로 입법화되지 못했다.
지난 4·11총선을 앞두고 선거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도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석패율제다. 석패율제는 2인 이상의 지역구 후보를 비례대표 명부의 동일 순위에 이중으로 등록시키고, 지역구에서 가장 적은 득표율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시키는 제도다. 이는 일본에서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중진 정치인들을 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비례대표 명부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하자”
석패율제는 지역구 차원에서 보면 다수 득표자가 낙선되고, 소수 득표자가 당선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40% 득표자가 낙선하고 10% 득표자가 당선될 수 있다. 이는 직능 대표성과 전문성 제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 대변 등 비례대표 제도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지역주의 완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기성 정치인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따라서 이런 정략적인 미봉책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 이는 현재 전국 단위로 작성되고 있는 비례대표 명부를 권역별로 작성하고, 권역별 정당 득표수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안이다. 한 정당에 배분되는 최대 의석수를 제한하면 특정 지역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정당 이외의 다른 정당도 지역대표성을 가진 비례대표 의원을 당선시킬 수 있다.
다만 현재 54석의 비례대표 의석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에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 대신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는 방안도 함께 강구돼야 할 것이다. 예컨대 선거구 획정 인구 기준을 조정하거나 대도시 지역의 선거구를 소선거구에서 중대선거구로 변경하는 방안 등이 있다. 대도시 지역의 선거구를 중대선거구로 바꿀 경우 현재 약 31만명인 선거구 인구 상한선을 적용하더라도 20석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현재 국회에 두고 있는 자문기구적 성격의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독립된 의결기관으로 설치하고, 선거구 획정에 관한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해 당사자인 정치권이 선거구 획정권을 갖는 한 당리당략적인 선거구 획정을 피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선거 때마다 선거구 확정이 지연돼 왔다.
지역주의는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매우 중대한 과제다. 그럼에도 정치적 이해로 인해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선거 개혁의 계기가 된 현행 공직선거법을 제정할 때도 일부 정치인들의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공명선거 구현이라는 국가적 대의를 위해 정파적,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줌으로써 마침내 입법화될 수 있었다. 정치권에서 다시 한번 그런 용단을 보여줄 때다.
이기선 중앙선관위 전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