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헤밍웨이 붐의 명암

입력 2012-07-30 18:49

서점에 가보면 미국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책이 즐비하다. 인터넷을 치면 무려 183종이 뜬다. 그중 대부분이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어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등 장편소설 4권에 쏠려있다. ‘노인과 바다’의 경우 민음사, 문학동네, 열린책들, 시공사 등 국내 유명 출판사가 새로운 번역본을 내놓고 경합하고 있다. 김욱동 이인규 교수 등 정상급 번역가들이 참여한 점도 이채롭다.

헤밍웨이의 매력은 많다. 195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니 작품성은 물을 것도 없다. ‘빙산(iceberg) 이론’ 혹은 ‘생략(omission) 이론’으로 설명되는 하드보일드 문체로 산문미학의 한 경지를 일군 점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다 전쟁터를 누빈 종군기자, 스페인 투우광, 아프리카 밀림을 헤치고 다닌 사냥꾼, 멕시코만의 심해 낚시꾼, 화려한 여성편력 등 마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생활을 즐기다가 엽총으로 자살하기까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헤밍웨이 붐에는 저작권도 영향을 미쳤다. 1961년에 사망한 헤밍웨이 작품의 저작권이 지난해 12월 31일로 끝났기 때문이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내용을 반영한 개정 저작권법은 저작권 보호기간을 선진국 수준에 맞는 사후 70년으로 연장했지만 2013년 7월 1일까지 유예기간을 정해 놓아 헤밍웨이는 이전 법에 따라 사후 50년 규정이 적용된다. 이 같은 계산법을 따르면 내년은 헤르만 헤세와 윌리엄 포크너의 차례다.

문제는 헤밍웨이의 빼어난 번역본을 사망 50년이 지난 시점에 읽는다는 점이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1926년에 나왔으니 발표 시점으로 따지면 85년이 넘는다. 지나치게 상업성에 치우치다 보니 번역 목록이 홀쭉한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헤밍웨이가 중요하면 이제는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과 같은 논픽션이나 다른 단편소설집도 우리말로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21세기의 정신을 담은 외국 작품은 제때에 활기차게 번역돼야 한다. 그래야 세상의 흐름을 읽을 수 있고, 사회변화의 자산으로 삼을 수 있다. 저작권이 부담스러워 출간을 미루면 문화지체를 유발한다. 고전은 꾸준히 읽혀야 하지만 철지난 고전에 역량을 쏟는 것은 낭비다.

출판은 지식의 최전선이다. 출판인들은 첨단의 이론과 사조를 소개하는 데 뒤처짐이 없는지 늘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화의 각축장에서 변방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