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복날 피서

입력 2012-07-30 18:46

珠盤和露黃金果

銀椀點氷白玉漿

紈扇小風淸似水

閑調錦瑟和霓裳

옥쟁반에 이슬 부어 황금 과일 띄우고

은 주발 백옥 음료엔 얼음 동동 띄웠네

비단부채에 이는 산들바람 물처럼 청량한데

그윽이 비파 타서 예상우의곡에 화답하네

서거정(1420∼1488) 사가시집 ‘미인피서도에 쓰다’


여름의 한가운데. 초복 중복을 지나 말복으로 향해 가는 열염의 나날이다. 날이 걷히면 태양이 작열하고, 구름이 끼면 습하고 무덥다. 밤은 양의 어깨뼈를 채 다 삶지 못할 만큼 짧고, 한낮이면 초목도 지쳐 숨을 몰아쉰다. ‘도포 차려 입고 단정히 있노라니, 미쳐서 크게 고함치고 싶다’는 옛 시인의 말이 과장만은 아니다.

이 무더위를, 서거정은 미인이 피서하는 그림을 보며 잠시 잊으려고 하였다. 그림 속 옥쟁반에는 달고 맑은 음료를 붓고 참외와 여름 과일을 띄워 화채를 만들었다. 은으로 만든 주발엔 시원한 미숫가루에 이 시린 얼음 몇 개를 띄웠다. 뿐만이 아니다. 비단부채에서 이는 바람이 목과 볼에 닿을 때마다 물을 살짝살짝 뿌리는 청량감이 느껴질 것 같다고 하였다. 그림을 보며 서거정은 더위를 잊었으리라. 우리는 서거정의 시로 더위를 잠시 잊는다.

예전에는 복날 피서가 일년의 큰 행사였다. 풍속 따라 땀 흘리며 보양식을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계곡물에 발 담그고 베어 무는 과일이나 그늘 아래 평상에서 들이켜는 화채도 그만이다. 조비(曹丕)는 건언칠자의 한 사람이었던 오질(吳質)에게 “맑은 샘물에 달콤한 참외 띄우고, 차가운 얼음물에 붉은 복숭아 담가놓았네(浮甘瓜於淸泉 沈朱李於寒水)”라고 시를 보냈고, 조선의 시인 이덕무 역시 “물이 많은 붉은 수밀도를 창문에서 사서, 깨물어먹으며 소요하며 북악에 닿았노라” 하고 복날의 피서를 노래했다.

복(伏)이란 엎드린다는 말이다. 하지 이후 서서히 자라나던 가을 기운이 복날을 만나 힘을 잃고 엎드려 숨는다고 옛 사람들은 생각하였다. 이 때문에 복날이 유난히 덥다는 것이다. 궁중에서도 이 날엔 궁문을 닫고서 공무를 폐했으며, 신하들에게 얼음과 고기를 하사하였다. 원기를 보충하고 심신을 쉼으로써, 여름 건강을 돌보던 풍속이다.

이규필(성균관대 대동문화硏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