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맹경환] 성난 얼굴로 보지말라
입력 2012-07-29 20:58
지난 4월 총선을 전후해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 혐오증)’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발단은 20대 여성을 납치해 토막 살해한 ‘오원춘 사건’이었다. 오원춘이 조선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 동포들은 따가운 시선에 시달렸다.
일부 언론들은 조선족과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잠재적 범죄자인양 호들갑을 떨었다. 급기야 필리핀 출신 이자스민씨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자 외국인 혐오증은 증폭됐다. 아직까지 이런 분위기는 완전히 가시지 않은 듯하다.
이자스민 의원이 최근 개최한 다문화 정책 토론회장에서는 외국인 척결 운운하는 단체들이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외국인 혐오증이 광범위한 외국인 대상 증오범죄(hate crime)로 번지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올해 1월 1일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장기체류 외국인, 귀화자, 외국인 자녀의 수는 모두 126만5006명. 전체 주민등록 인구의 2.5%다. 이들 외국인 가운데 상당수는 3D 업종에 종사한다. 그동안 우리가 하기 싫은 일을 맡아서 해온 측면이 많다. 많은 중소기업들은 이들 덕택에 그나마 생산 원가를 줄여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순기능을 외면한 채 갑자기 외국인 혐오증이 만연해가는 원인은 우리 경제의 불황과 깊은 관계가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경제활동 참가가 늘어나는 것과 반대로 한국인 노동자의 고용 환경이 좋지 않자 불만이 커졌다. 그 불만의 화살을 정부나 기업이 아닌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 이민 여성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혐오증 얘기를 꺼낸 건 ‘다문화 사회의 성숙한 자세’ ‘세계화 시대의 역행’ 등의 ‘훈계’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꼭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우리나라는 ‘20-50 클럽’에 가입했다.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20K)를 넘는 나라 중 인구가 5000만명(50M)인 곳은 지구상에 7개 나라에 불과하다니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수출 위주의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로 가기 위해서는 내수시장 확대가 필수적이다. 내수시장이 크려면 그에 걸맞은 인구 규모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인구는 올해 5000만명을 넘어선 뒤 2030년 5216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이 된다. 경제를 이끌어갈 20∼60세의 핵심 근로인력은 그보다 먼저 2019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50년에는 1987년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인구 증가로 현재는 10명이 일해서 노인 1∼2명만 부양하면 되지만 30년 뒤에는 6명이나 책임져야 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는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다. 기대난망이지만 출산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더라도 그들을 노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15∼20년은 기다려야 한다. 정년을 높이고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여 고용률을 높일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남은 대안은 외국인 노동력이다. 개성공단에서처럼 북한의 인력도 활용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부족한 노동력을 외국 이민자로 채워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들은 많다. 이제 우리나라도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외국인 노동자를 성난 얼굴이 아니라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우리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를 부양할 사람들이다.
맹경환 경제부 차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