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국민 고문당했는데 어물쩍 넘기려한 정부

입력 2012-07-27 18:51

중국 공안당국에 114일간 구금됐다가 풀려난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전기고문을 당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씨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구금 당시 물리적 압박, 잠 안 재우기 등 많은 가혹행위가 있었다”고만 했지만 지인들 입을 통해 전기고문을 비롯, ‘통닭구이 고문’ ‘비둘기 고문’ 등 별칭(別稱)이 있는 고문을 대부분 겪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도 어제 김씨를 통해 전기고문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중국 공안은 김씨의 비명소리가 밖에 안 들리게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전기봉을 몸에 들이댔는가 하면 고문 흔적을 없애기 위해 석방 두 달 전쯤부터는 하루 13시간씩 강제노역만 시켰다고 한다.

아직도 이런 반인륜적 고문을 자행하는 나라가 국제사회의 핵심국이라니 개탄스럽다. 중국은 2010년 10월 우리 해경이 불법어로 중인 중국 어선 3척을 나포하자 ‘문명적인 법 집행’을 요구했다. 지난해에는 불법어로 중이던 중국 선장이 이를 단속하는 우리 해경을 살해해 붙잡히자 “인도주의적으로 대우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살인을 저지른 자국민을 위해 상대국엔 ‘인권’을 요구하면서 남의 나라 국민의 인권을 무참히 유린해도 되는가.

자기 나라 국민을 특별한 죄목도 없이 114일이나 감금해 놓고 반인륜적 고문을 가했는데 우리 정부는 뭘 했나. 외교통상부는 지난달 11일 김씨 면담 과정에서 전기고문 사실을 파악하고도 한·중 외교마찰을 우려해 숨겨 왔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어제 국회 상임위에서 “지난달 랴오닝성 측에 문제제기를 했으나 중국 측이 ‘가혹행위는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며 “김씨의 진술 직후 중국 측에 재조사를 요구한 상태”라고 했다. 한심한 정부는 김씨가 폭로하지 않았다면 중국 말만 믿고 덮을 생각이었나 보다.

북한의 위협에 항상 노출돼 있는 우리로선 지렛대 역할을 하는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는 국가의 가장 큰 임무는 자국민 보호다. 철저한 조사와 함께 중국 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