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퍼스트레이디

입력 2012-07-27 18:52

‘퍼스트레이디’란 용어는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용어는 제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부인으로 백악관 안주인의 역할 정립에 공헌했던 돌리 매디슨의 1849년 국장 때 재커리 테일러 당시 대통령이 조사를 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현존 인물이 최초로 퍼스트레이디 칭호를 받은 것은 15대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 때였다. 1860년 프랭크 레슬리가 월간지에 “백악관의 레이디, 지상의 퍼스트레이디”라는 글을 썼다. 그러나 뷰캐넌은 실상 독신이었고, 퍼스트레이디 역할은 조카인 해리엇 레인이 했다. 용어가 대중화된 것은 1877년 뉴욕의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19대 대통령 러더포드 헤이스의 취임식을 보도하며 이 말을 사용한 때부터였다.

이후 이 용어는 대통령이나 주지사 부인, 다른 국가원수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로 일반화됐다. 파생된 말로 대통령 부부는 퍼스트 커플, 그 가족은 퍼스트 패밀리라 불린다. 부통령 부인에겐 세컨드 레이디 혹은 바이스 퍼스트레이디란 표현을 쓴다. 국가원수가 여성인 경우 배우자는 퍼스트젠틀맨이라 불린다. 하지만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와 사실혼 관계인 팀 매티슨은 ‘퍼스트 블로크(Bloke)’라고 자칭했다. 블로크는 남성을 일컫는 속어다.

뷰캐넌 대통령의 경우처럼 부인이 아닌 인물이 퍼스트레이디인 경우도 종종 있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독신으로 여동생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고 있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은 1994년 이혼한 뒤 딸 게이코를 퍼스트레이디로 공식 명명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2007년 재직 중 이혼한 뒤 재혼을 해 퍼스트레이디가 바뀌기도 했다.

일반적인 국가에서 퍼스트레이디를 공석으로 두지 않는 반면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퍼스트레이디를 대중 앞에 잘 드러내지 않는다. 존재 자체가 비밀처럼 다뤄진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아내 라이사가 서방에 제대로 알려진 첫 퍼스트레이디다.

최근 북한에서 퍼스트레이디 이설주의 존재와 이름을 공개해 파격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런 변화가 일회성에 그칠 것인지, 고르바초프 때처럼 본격적인 개혁과 개방의 길을 걷는 신호가 될지 관측들이 무성하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