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명호] 한·미 대선 프레임 짜기

입력 2012-07-27 18:44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의 선거전략 프레임은 ‘변화(change)’였다. 선거 내내 미국의 변화를 강조했다. 기저에는 ‘미국은 하나’라는 전제를 깔았다.

“진보적인 미국도, 보수적인 미국도 없다. 하나의 미국만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그 구호 ‘담대한 희망’을 역설했다. 현 상황,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하지 말라는 리더십도 살짝 얹었다.

두 전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나날이 망가지는 경제 상황에 염증을 느끼던 유권자들에게 변화 프레임은 강력히 작동했다. 오바마 진영은 미국민들의 눈과 귀를 확 잡아끄는 프레임을 짠 것이다.

2004년 대선은 좀 싱거웠다. 현직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적극 활용했다. 프레임은 애국심과 단결. 이라크 전쟁의 원인인 대량살상무기(WMD) 보유가 거짓으로 드러났지만, 부시와 네오콘들은 노련하게 대응했다. 어느 순간 전쟁 명분을 사담 후세인의 학정(虐政)으로부터 해방, 민주주의 확산으로 치환했다. 진보 진영은 무기력하게 당했다.

미국의 대표적 진보 지식인이자 인지언어학의 선구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을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틀’로 규정했다. 이 저서는 2004년 대선에서 진보 진영의 백악관 탈환 실패 뒤 원인 분석과 향후 대응책으로 쓴 것이다. 당시 민주당 후보 존 케리는 부시의 실정을 드러내고 논쟁에서도 이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졌다. 레이코프는 이유를 이렇게 봤다.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 한 번 프레임이 짜여지면 그 프레임에 맞지 않는 정보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네오콘의 외교 정책은 ‘우리 편에 줄서지 않으면 적’이었고, 국내 정책은 ‘대테러 전쟁을 반대하면 이적 행위’였다. 그 프레임은 정확하게 작동했다. 다른 주장들은 튕겨져 나갈 뿐이었다.

2007년 한국 대선은 부자 프레임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팍팍한 삶에 찌든 이들에게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은 ‘잃어버린 10년 극복, 오로지 경제’를 주입시켰다. 지금보다 부자 만들어주겠다는 데 다른 주장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2012년 한·미 대선 후보들의 주요 목표는 중도층 끌어오기다. 미국은 진보 보수 양쪽의 원심력을 작동시킨다. 오바마는 동성 결혼에 찬성하고, 부자 증세를 주장한다. 롬니는 작은 정부, 감세, 강한 국방력으로 맞불을 놓는다. 확실한 색깔로 중간층을 각각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편가르기 프레임이다.

한국은 다르다. 사실상 여당 후보 박근혜는 경제민주화, 복지를 선점했다. 현 정권의 부패와 기득권과의 차별을 강조한다. 골통 보수보다는 중도층 속으로 들어간다. 확실한 중도 프레임이다. 민주당은 진보의 강점인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얘기할수록 박근혜가 설정한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그저 ‘박근혜=과거 회귀’에 매달리며 당내 싸움에만 몰두했던 야당은 선거 초반 프레임 전쟁에서 일단 졌다.

그런데 안철수라는 강력한 변수는 다른 프레임을 구사한다. 그는 상식과 비상식을 구분하고, 공적 분노를 얘기하며, 중소기업과 열정을 강조한다. 이념 대응 전략이 아니다. 모든 분야의 건강한 공정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공정 프레임, 건강 프레임으로 대선에 접근한다.

결국 한·미의 대선 결과는 누구의 프레임이 유권자들의 머릿속을 휘어잡느냐에 달려 있다. 그 프레임을 짜는 것은 후보의 역사관과 실력인 것이고.

김명호 국제부 선임기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