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이순신-④ 힐링 캠프] 백성과 군사를 치료하다

입력 2012-07-27 18:45


마음치유가 이슈가 되고 있다. 관련 책은 물론 ‘힐링캠프’라는 방송프로그램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생길 지경이다. 민생 현장을 돌며 국민들의 아픈 곳을 찾아 힐링하고, 방법을 고민해야 할 대통령 후보들의 자화자찬, 초대받지 못한 분들의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이 더운 여름날을 더 덥게 한다.

조선 수군과 힐링캠프. 어울릴 것 같지 않고, 상상할 수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순신은 신상필벌에 엄격했기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곤장도 치고 처형도 했다. 그러나 성실하고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 또 굶주리고 병든 군사와 백성과 함께했다. 때문에 이순신의 조선 수군 그 자체는 병든 몸과 지친 마음 모두를 치유하는 힐링캠프였다. 치료사의 모습은 전쟁 초기 광양현감으로 이순신에게 경상도 해안의 물길과 지형을 조언해 승리로 이끌었던 어영담이 전염병을 이기지 못해 죽었을 때 “이 아픔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라고 한 말에 다 들어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년부터 전염병이 창궐했다. 1594년에는 전라좌수군의 30%인 2000여명이 전염병에 걸렸거나 그로 인해 사망했다. 이순신 자신도 1594년 2월 말부터 “몸이 몹시 불편해 종일 신음했다” “뒤척이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기록할 정도로 12일이나 병으로 신음했다. 그런 가운데도 군사들을 위해 약을 많이 준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임금의 특명으로 유능한 의원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난관 끝에 전염병을 극복했다.

장졸들의 마음도 문제였다.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죽음에 대한 공포, 죽고 죽여야 하는 비정함으로 상처받고 아파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이순신은 때때로 장졸들에게 씨름 시합을 하게 했고, 심지어 투항한 일본군의 외로운 마음을 고려해 그들만의 광대놀이를 허락해 주었다. 이순신의 목적은 한때의 유흥이 아니었다. “오래 고생하는 장졸들의 노고를 풀어 주려는 계획”(1596년 5월 5일), 이것이 참 힐링이다.

그런 이순신이었기에 그가 파직되었을 때는 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울부짖었고, 그가 전사한 뒤에는 백성들이 자신의 부모상을 치르는 것처럼 고기도 먹지 않고, 흰 옷을 입게 만든 것이다. 어느 시대의 백성들이나 진정한 리더는 먼저 알아본다. 힐링 쇼에 웃고 우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일 수는 없다.

박종평(역사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