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덤핑시대] 미래는 불안하고, 현실은 어렵고, 후배는 떠나고… 출발부터 ‘멘붕’
입력 2012-07-27 19:55
심적 고통 극심한 박사과정
박사들의 고난과 진로에 대한 불안은 학위를 따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은 스스로를 ‘앵벌이’라고 자조한다. 교수가 연구실적을 위해 강요하는 프로젝트 수주에 매달려야 하고, 프로젝트를 받아야 그나마 생활비라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교수를 만나면 고생을 덜하지만 교수를 잘못 만나 스트레스로 탈모 증상까지 겪는 경우도 있다. 지방 대학 자연과학계열 박사 5년차인 김모(33)씨는 내년 초 학업을 마치고 결혼하려 했던 계획을 미뤘다.
김씨는3년 전만 해도 박사 학위가 가져다줄 명예를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당장 수입이 없어 대학 친구들도 못 만나는 처지다. 김씨는 직장 생활 5년차인 친구들을 보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같은 연구실에 있던 후배 한 명도 “불투명한 미래가 불안하다”며 지난달 학교를 떠났다.
서울의 한 대학원 박사 3년차인 이모(31·여)씨는 “프로젝트 수주 부담만 없어도 견딜 수 있겠다”고 말했다. 정부나 기업의 프로젝트를 받으면 연구 수행비가 지급되는데, 인건비가 포함돼 있어 박사 과정 학생에게는 ‘생활비’로 쓰인다. 이씨는 “능력 있는 교수들은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따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수를 잘못 만나면 낭패다. 프로젝트를 따오는 것은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박사과정 학생들은 교수 이름을 빌려 프로젝트를 받고, 보고서 제출 압박에 시달린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맡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방대 생명공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모(34)씨는 최근 스트레스성 탈모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는 “생명공학 계열은 프로젝트를 받으려는 학생을 줄 세우면 서울을 한 바퀴 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며 “프로젝트를 못 따면 생활비도 못 벌고 교수의 실적 압박에도 시달린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8월 졸업을 앞둔 김씨는 다른 기관의 연구직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김씨는 “학교에서 연구도 많이 하고 후배를 양성하는 꿈을 갖고 박사를 시작했다”면서 “프로젝트 수주에 시달리는 현실에 지쳐 학교를 떠나려 한다”고 털어놨다.
아예 과외를 구하려는 박사과정 학생도 많다. 고려대 자연과학계열 박사과정 4년차인 정모(35)씨는 한 인터넷 카페에 과외 학생을 모집하는 글을 올렸다. 정씨는 “프로젝트의 경우 연구 결과 보고서를 내야 하기 때문에 압박을 받는다”며 “용돈 벌이 목적으로 프로젝트를 할 바엔 과외가 낫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터넷 게시판에는 과외 자리를 구한다는 박사과정 학생들의 글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서울대 대학신문이 지난 4월 같은 학교 대학원생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진로지원’에 대한 만족도는 5점 만점에 2점대로 나타나 졸업 후 진로에 대한 불안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응답자는 “시간과 돈을 들여 박사과정을 마친다 해도 앞날이 밝지 않다”며 “결혼 문제와 진로 문제가 겹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응답자의 7%는 ‘의식주 등 기초 생활에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으며 약 20%는 ‘등록금 납부에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한 학생은 “학비 충당을 위한 아르바이트 시간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