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덤핑시대] 차라리 박사가 아니었으면… 48세 어느 지방대 강사의 절규
입력 2012-07-27 21:49
박사 학위만 따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줄 알았다. 저명한 교수로 초롱초롱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멘토가 되는 꿈도 꾸었다. 그렇게 6∼7년을 죽어라 공부만 했다. 친구들이 대학졸업 후 하나둘씩 번듯한 직장에 들어갈 때도 난 그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위안을 삼으며 버텼다. 그러나 박사 학위는 오히려 애물단지가 됐고 인생의 발목을 잡았다.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면 박사 학위를 따려고 시간 낭비하지 않을 텐데….
영남권 거점 국립대학에서 생물학 석사와 박사까지 딴 김모(48)씨는 요즘 매일 부질없는 후회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는 월 150만원도 못 버는 시간강사다. 2000년 박사 학위를 받은 뒤 5년 정도는 여러 곳에 원서를 내 면접도 보고 공개 강의도 여러 번 했다. 경제적·시간적 여유는 없었지만 ‘전임교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렇게 생활한 지 벌써 12년째. 이제 체념할 때도 됐다. 그는 국립 A대와 사립 B대에서 강의한다. 국립대의 강의료는 시간당 7만원, 사립대는 4만원 정도. 국립대에서 3학점짜리 1과목을 맡으면 한 달에 84만원, 사립대에서 2학점짜리 2과목을 강의하면 64만원으로 한 달 강의료는 148만원이다. 이마저도 다른 연구원에 적을 두고 있다면 국립대 강의료는 절반으로 줄어 시급 3만5000원이 된다. 1학점짜리 실험과목은 1주일에 3∼4시간을 수업해야 하지만 강의료는 1시간 분량만 지급된다.
김씨는 가장이다. 전업 주부인 부인과 아이 2명이 있다. 대학원 때 결혼한 이후 단 한번도 경제적인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학원이나 과외는 사치였다. 몇 년 전 큰딸이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동료 시간강사들에게 품앗이 과외를 부탁했다. 김씨도 다른 자녀들에게 품앗이로 갚았다. 김씨는 특히 방학이 두렵다. 수업이 없으면 수입도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방학이 되면 돈벌이를 찾아 헤매야 한다. 각종 연구원 자리도 알아보지만 대부분 계약직이다. 계약이 끝나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아 떠돌아야 한다. 연구소는 석사보다는 박사를 부담스럽게 여겨 박사라는 걸 숨기고 싶을 때가 많다고 했다. 이제 전임교수 자리에 원서 내는 건 포기했다.
학위를 받은 지도 오래됐고, 대학에선 실력 외에 ‘간판’ 등 요구하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김씨는 “시간강사에게 연구는 사치”라고 말했다. 연구하는 시간강사는 강의료도 절반이고, 여기저기 떠도는 강의와 연구를 함께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The winner takes it all 이라는 말이 있죠. 승자가 다 가져가는 구조, 똑같이 십 수 년을 공부해 박사가 돼도 전임교수는 연봉 6000만∼7000만원에 부수입도 많지만, 강사는 2000만원이 안 됩니다. 미친 세상이죠. 먹고 살게는 해줘야 하는데….” 김씨에게 미래는 없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