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교육의 현장] 음악의 힘, 폐교 위기서 명문으로… 여수 소라면 관기초교의 작은 기적

입력 2012-07-27 18:32


3년 만에 학생수가 4배 증가한 초등학교가 있다. 100여명은 입학 대기 중이다. 수도권 명문 사립초등학교가 아니라 전남 여수시 소라면 관기초등학교 얘기다. 농어촌의 작은 학교들은 인구 감소로 존립이 위태롭지만 이 학교는 예외다. 지난 5일 관기초등학교를 찾았다. 산과 논, 꽃밭에 둘러싸인 교정은 놀이동산 같았고, 여름방학을 하루 앞둔 초등학교는 들떠 있었다. 이 학교의 오케스트라는 28일에 있을 여수 엑스포 초청공연 연습으로 분주했다.

고사리손이 만들어낸 힘 있는 연주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정돈된 연주가 30분 넘게 초등학교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자신의 몸보다 두 배나 큰 콘트라베이스를 안고 있는 여학생, 차분하게 바이올린에 턱을 괸 남학생, 두 볼에 힘을 잔뜩 주고 미간을 찌푸린 채 트럼펫을 입에 대고 있는 남학생 등 오케스트라 단원 50여명은 지휘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각자의 파트를 묵묵히 담당하고 있었다.

‘오페라의 유령’, ‘카르멘 서곡’ 등으로 이어진 수준급 연주에 한 남성 교사가 큰 목소리로 ‘앵콜’을 외쳤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교장이 “오케스트라 연주 후에는 ‘앵콜’이 아니라 ‘브라보’라고 하는 거예요”라며 면박을 줬다. 교사는 뒷머리를 긁적거렸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앉아 있는 체육관 단상에서 ‘피식’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다른 교사들도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여름방학을 앞둔 여수 관기초등학교의 풍경은 웃음과 음악이 어우러져 있었다. 이 학교는 섬 출신 학생들을 고려해 일반 학교보다 보름 일찍 방학을 시작한다.

◇폐교 위기에서 명문교로=관기초등학교는 2009년까지 폐교예정 학교였다. 여느 농촌의 작은 학교처럼 매년 뭉텅이로 학생이 빠져나가더니 2009년에는 전교생이 35명으로 줄었다. 급격한 노령화로 인해 지역 사회는 학교를 살릴 여력이 없었고 폐교는 불가피해 보였다.

현재 관기초등학교에는 140명이 다닌다. 여수시내와 인근 최대 도시인 광주광역시는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입학 문의가 끊이질 않는다. 학교 근처에 집을 짓고 내려와 살겠으니 들어가게 해달라고 조르는 서울 거주 학부모도 있었다고 한다. 전남교육청과 여수 교육지원청, 각종 교육단체 등은 입학을 원하는 학부모들의 등쌀에 정원을 늘려달라고 학교에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기초등학교 김공 교장은 “작지만 알찬 학교가 방침이다”며 난색을 표한다.

‘명문’ 관기초등학교의 비결은 오케스트라. 현재 관·현·타악기가 망라된 정식단원 62명, 예비단원 10명이 활동한다. 1학년 때부터 악기 교육을 시작해서 2∼3년 동안 다양한 악기를 접하고 적성에 맞는 악기를 골라 교습을 받은 뒤 오케스트라에 입단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사교육은 필요 없다. 악기와 강사 모두 학교에서 제공한다.

◇오케스트라 교육의 허브=오케스트라는 특색 있는 교육을 해보자는 교감 이정규 선생님의 아이디어였다. 합주 교육에 열정이 있었던 이 교감은 폐교가 거의 확실시 되는 상황이었지만 리코더·멜로디언·큰북 수준에 머물던 합주반을 오케스트라로 확대하기로 했다. 뜻을 함께 하는 교사와 학부모를 모아 합주반을 외부에 알리기 시작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등을 앓는 아이를 둔 한 어머니가 팔을 걷어붙였다. 학교가 없어지고 큰 학교로 전학가면 아이가 적응 못하고 힘들어할 것 같아 아이를 치료한다는 심정으로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고 한다. 점차 합주반의 이름이 알려졌고 정부가 지원에 나서게 됐다. 결국 오케스트라로 확대하는데 필요한 악기를 마련할 수 있었고, 광주시향의 도움으로 악기별 전문 교습 인력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졸업하면 많게는 6개까지 악기를 다루게 된다는 입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특히 게임에 빠져드는 것을 우려하던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에게 악기를 다루게 하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이 학교에서 시작된 오케스트라 열풍은 인근 학교로 전파됐다. 전남에만 13개 초등학교에서 오케스트라가 운영되고 있으며 각 학교의 오케스트라 담당 교사는 매주 관기초등학교에 모여 오케스트라 운영과 관련한 교육을 받고 있다.

◇“환경이 달라지면 아이들 쓰는 말이 달라진다”=이 학교 고학년들은 대부분 오케스트라 단원이다. 모여서 연습하는 시간이 많다. 지휘자인 이 교감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연주한다. 트럼펫을 연주하는 오은수(11)군은 “다같이 모여 연습할 때도 좋지만 연습실에서 아이들과 떠들며 노는 것도 신난다”면서 “카르멘을 연주할 때는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김민서(10)양은 “바이올린 연주자가 꿈이다”며 “친구들과 즐겁게 연주하고 사람들에게 박수 받으면 정말 기분이 좋다”면서 웃었다.

이 교감은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에 아름다운 곡을 함께 연주한다. 아이들 입에서 욕설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이유라고 본다”면서 “전근 온 선생님이나 전학 온 학생들이 가장 신기해하는 부분”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관기초등학교에는 독특한 프로그램들이 더 있다. 매년 6월 전교생이 교사·학부모들과 함께 지리산에 오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1·2학년은 중간 지점인 법계사까지만 오르고, 3학년부터는 전원 천왕봉에 도전한다.

텃밭도 가꾼다. 푸근한 느낌의 뒷산과 바로 아래 위치한 학교 뒤뜰에는 해바라기가 잔뜩 펴 있다. 학생들이 텃밭으로 가꾸는 곳으로 학년과 반이 적힌 팻말이 줄지어 꽂혀 있다.

쉬는 시간 짬짬이 자신보다 키 큰 해바라기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고 벌레를 잡는다. 김 교장은 “학교에 온 손님들은 누구나 자신의 자녀를 우리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얘기 한다”면서 “(학교를 살리는 데는) 처음이 가장 힘들다. 먼저 교사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학생은 따라오게 돼 있고 그러면 학부모도 변한다. 그러면 학교는 자연스럽게 살아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여수=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