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덤핑시대] 학연·지연 얽힌 대학 아무리 뚫어도 바위치기… 해외파 女 박사의 좌절

입력 2012-07-27 18:28

박터지는 경쟁, 갈곳이 없다

국내 유명 사립대에서 정치학 석사까지 마치고 일본에서 7년간의 박사 과정을 견뎌낸 이정민(45·여)씨는 1999년 금의환향하듯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새로운 세상은 열리지 않았다. 이씨는 12년째 연구소를 전전하며 연구원과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 현재 정부 산하 연구재단에서 선정한 연구소에서 중점 연구사업을 맡고 있다. 이씨는 “그래도 전업 강사들보다는 비교적 좋은 조건”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박사로 사는 생활에 대해 설명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가 받는 급여는 시급 4만원. 3학점짜리 수업 1개를 하면 한 달에 50만원도 쥐기 어렵다. 그렇다고 강사들에게 많은 과목을 맡기지도 않는다. 시간강사들은 전임 교수들이 먼저 선점한 시간대를 피해 늦은 오후나 이른 아침에 강의를 한다. 시간이 겹치기 때문에 일주일에 3과목 이상 맡기는 어렵다. 아무리 뛰어도 월 200만원을 벌기는 어렵다. 그나마 수업을 많이 맡으면 연구는 스스로 포기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이씨는 박사들의 연구 프로젝트마저도 인맥이나 학연으로 엮이는 게 허다하다고 전했다. 프로젝트 사업은 대부분 2년이 계약조건. 계약기간이 끝나면 연구원 계약도 같이 끝나버린다. 이씨는 “2년짜리 프로젝트를 맡아도 1년이 흐르면 다음 프로젝트를 따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며 “박사들 사이에선 프로젝트 연구 5개는 해 봐야 전임이 될 수 있다는 씁쓸한 농담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프로젝트 연구 5개면 10년이다. 학사부터 10년 이상을 공부해 취득한 박사학위. 그 후에도 평균 10여년을 더 떠돌아야 한다.

이씨는 전임 교수 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각종 차별을 겪었던 경험도 털어놨다. 정년이 보장되는 전임 교수 임용에는 학연·지연·인맥·성별에 따른 차별이 뚜렷하다고 했다. 이씨도 수차례 이런 유리천장을 느꼈다. 전임 교수 탈락 후 학교에 명확한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하면 면접 점수가 당락을 갈랐다는 말로 둘러대기 일쑤였다. 인맥 중심의 임용과정은 이미 관행처럼 굳어져 교과부 산하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제기해도 이기기 어렵다고 했다.

정년 보장을 조건으로 내건 연구소도 상황은 비슷하다. 박사 6명으로 출발한 서울의 한 대학 연구소는 그중 절반의 교수를 전임 교수로 전환해야 하는 규정을 무시하고 엉뚱한 사람을 낙하산으로 앉히기도 했다. 이씨는 “박사들의 숫자는 급상승하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자리는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해 연구소 박사들 간에 살아남기 위한 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