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위안화 ‘평가절하’ 착수… 美는 “절상” 거센 압박
입력 2012-07-27 00:12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유로화·달러화·위안화의 화폐전쟁을 부르고 있다. 중국이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유럽·미국·중국의 화폐전쟁은 2010년 금융위기로 불거졌던 1차에 이어 두 번째 환율 다툼이다.
릐위안화 선전포고=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방향으로 돌아섰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 보도했다. 지난 2년간 위안화 강세를 유지했던 중국이 화폐 평가절하로 경기부양에 나선 것이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중국 상품의 국제시장 가격도 하락해 수출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고시하는 달러화 대비 위안화 환율은 올해 들어 1.1% 상승했다. 그만큼 위안화의 가치가 떨어지고 달러화 가치는 높아졌다. 지난해에는 4.7% 하락하면서 위안화의 힘을 키웠던 것과 반대다. 금융전문지 중국증권보는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지만 급격한 추락은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위안화 끌어내리기를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WSJ는 “미국의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경제성장의 위험을 최소화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중국의 기습공격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는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에 더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면서 중국을 ‘환율 조작국가’라고 비난했다. 유럽중앙은행(ECB) 마리오 드라기 총재도 “유로를 지키는데 필요한 모든 준비가 돼 있다”며 적극적인 시장 개입 의지를 밝혔다.
미국도 달러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싶어 한다.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 미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약해진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높은 실업률 때문에 고민하는 미국 정부엔 달갑지 않은 일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미국을 떠난 제조업체를 불러들이는 일을 자신의 경제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매일 신용등급이 추락하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 국가)은 미국·중국과 달리 유로화 가치를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다. 유로화 가치는 2년 내 최저수준까지 하락했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25일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이라고 평가한 데 이어 26일엔 독일계 은행 17곳과 푸조 등 유럽기업의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로존의 부실국가들은 국채를 발행해 정부가 쓸 돈을 마련해야 할 형편인데,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다 보니 이자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가 평가절하 경쟁을 벌이는 게 달갑지 않은 형편이다.
릐패권보다 생존=2년 전 유로존의 금융위기가 불거졌을 때는 양상이 달랐다. 유로존과 미국, 중국은 자기네 화폐의 힘을 키우며 경제 주도권을 움켜쥐려고 경쟁했다.
달러화를 대신할 국제통화 패권 자리를 노리던 유로화는 2010년 유로존 최약체국 그리스의 국가부도 사태로 추락을 시작했다. 미국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주춤하고 있는 사이 중국이 그리스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하며 구원자로 나섰다. 위안화의 위력을 세계에 과시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겉으론 반기면서도 위안화에 맞서 달러나 유로의 힘을 지킬 방안에 골몰했다.
지금은 위안화·달러화·유로화 모두 어깨에 힘을 빼고 돈을 풀고 있다. 시중에 화폐가 늘어날수록 화폐 가치는 떨어진다. 당연히 해당 화폐의 힘도 약해진다. 하지만 통화 패권보다 당장 경제를 살리는 일이 더 급하다. 국제통화기금은 이날 발표한 중국경제 보고서에서 “유럽 재정위기가 중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이라며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경제성장률이 반토막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하와 함께 26일과 24일 모두 960억 위안을 채권재구매 형식으로 시중에 풀었다. 한국 돈 17조원 규모다. 베이징 톈진 등 10개 지역에선 서비스업종의 세금을 낮췄다.
미국도 3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앞두고 시장에 달러화를 푸는 양적완화 등 다양한 경기부양책이 거론되고 있다. 유로존은 다음 달 2일 금융통화정책 회의를 앞두고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 재무장관은 25일 파리에서 만나 “구제금융을 신속하게 이행하라”며 속히 돈을 풀라고 촉구했다. ‘화폐전쟁’은 2007년 쑹훙빙(宋鴻兵)이 펴낸 책 제목으로, 금융위기를 예견해 화제가 됐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