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과학과 만나다] 無心의 활 시위, 금맥 터뜨린다

입력 2012-07-26 15:57


“욕심을 버려라.”

박경모(37) 공주시청 남자 양궁팀 감독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4년 전 아픈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 남자 양궁 결승전 막판에 그의 활이 흔들렸다. 앞서고 있다 보니 욕심이 생겨 마인드 컨트롤에 실패한 것. 결국 그는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루반에게 112대 113으로 패해 은메달에 그쳤다.

박 감독은 한국 남자 양궁 대표 오진혁(31·현대제철), 임동현(26·청주시청), 김법민(21·배재대)에 대해 “준비를 많이 했고, 컨디션도 좋아 보이더라”며 “마음을 비우고 쏘면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휩쓸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선수들은 욕심을 버리기 위해 어떤 훈련을 했을까.

코칭스태프는 런던 올림픽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산악등반, 군부대 훈련, 야구장 소음적응 훈련은 기본이었다. 아이패드를 활용해 경기장인 로즈 크리켓 가든을 가상 체험하는 이미지 트레이닝도 반복했다.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심리훈련이었다. 활시위를 놓는 순간 미묘한 심장박동 하나에 화살이 과녁 중심에서 벗어나는 게 양궁이기 때문이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이 주도한 심리훈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인지 재구성’과 ‘수행 루틴(routine)’이 그것이다. 인지 재구성은 불안을 유발하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합리적으로 전환시키는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다. 수행 루틴은 불안 요소를 줄이기 위해 습관적으로 지키는 일정한 행동 절차다.

양궁은 런던 올림픽부터 세트제가 도입돼 변수가 커졌다. 세트제는 2010년 4월부터 양궁 경기의 박진감을 더한다는 취지로 도입한 새로운 점수 측정 방법이다. 이전엔 12발을 쏴 총점으로 승부를 가렸지만 이번엔 8강 이후부터 3발씩을 1세트로 해 5세트(8강 이전은 6발 3세트)로 진행된다. 세트에서 이기면 2점, 비기면 1점이다. 승점이 높은 쪽이 이기게 돼 긴장감이 더 높아졌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의 양궁 담당 김영숙 박사는 지난해 2월 안면 종양수술을 받고 슬럼프에 빠졌던 임동현의 재기를 도왔다. 김 박사의 심리훈련으로 기량을 되찾은 임동현은 지난 5월 안탈랴 월드컵대회에서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2관왕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작년부터 양궁 대표팀의 심리훈련을 진행해 온 김 박사는 런던 현지에서 불안감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을 상담하고 있다. 1984년 LA올림픽부터 지금까지 총 16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은 한국 양궁 대표팀은 27일 오후 5시(한국시간) 남자 개인 예선을 시작으로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