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노총각 진정서

입력 2012-07-26 18:36

“누님 누님 나 장가보내 주/ 까마귀 까치 울고 호박꽃 피는 내 고향의/ 어여쁘고 순직한 아가씨가 나는 좋아/ 오이김치 열무김치 맛있게 담고/ 알뜰살뜰 아들 딸 보는 아가씨에게/ 누님 누님 나 장가보내 주/ 응 응 으응 장가 갈 테야”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러 유명한 대중가수 김정구(1916∼1998)가 1938년 선보인 코믹송 ‘총각 진정서’다. 우스꽝스러운 가사와 리듬이 뒤섞여 당대에 만요(漫謠)라고 불리던 노래다. ‘비단이장수 왕서방∼’으로 시작하는 ‘왕서방연가’와 더불어 김정구가 부른 만요의 대표곡이다.

‘애수의 소야곡’ ‘신라의 달밤’ ‘굳세어라 금순아’ ‘감격시대’ 등을 지은 대중음악가 박시춘(1913∼1996)이 작곡한 것을 보면 당시 만요의 인기몰이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식민지 시기, 그것도 만주사변·중일전쟁 등으로 전쟁의 위협이 커지고 살림살이도 팍팍하다 보니 오히려 코믹풍의 노래가 히트를 쳤던 모양이다.

가사는 미혼남이 장가를 보내달라고 떼를 쓰는 내용이다. 기어코 장가는 가겠노라고 의지를 불태우지만 장가 못 간 이유가 꼭 누님 탓은 아닌 듯하다. 어쩌면 제 앞가림도 못하는 처지라서 결혼상대를 구하지 못하니 애꿎게 누님에게만 조르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눈은 높아서 어여쁘고 순직하며 김치 잘 담그고 애 잘 키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단다. 어차피 현실은 그리 되기 어려우니 소원이라도 빌어보려는 것일까. 가정을 꾸리고 애를 낳아 키우자면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는 얘기다.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통계로 본 서울 남성의 삶(2010)’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35∼49세 미혼 남성은 지난 20년간(1990∼2010) 2만4239명에서 24만2590명으로 10배가 됐다. 같은 기간 6.4배로 늘어난 동연배의 미혼 여성보다 급증세다. 30∼49세 남성 3명 중 1명(30%)은 미혼이고 30∼39세는 절반가량(46%)이 독신이다.

만혼(晩婚)과 비혼(非婚)이 만연된 탓인데 그 배경은 남성의 낮은 학력, 열악한 직업 등과 직결돼 있다. 30∼39세 미혼 남성의 절반 이상(52.4%)이 고졸 이하였고, 같은 연령대 미혼 여성의 61%는 대졸 이상이었다. 또한 40대 미혼 남성의 직업별 분포는 무직 27.4%, 일용직 17.7%, 임시직 13.5% 등이다.

21세기 만요 ‘노총각 진정서’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결혼과 출산이 애국인 시대라는 게 실감난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