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온수가 나오다니… 꿈만 같아요” 18년간 겨울 얼음물 샤워 쪽방촌 김상금씨

입력 2012-07-26 20:33

고층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서울 관악구 미성동의 쪽방촌. 이곳에서 18년 동안 가족과 함께 살아온 김상금(52)씨의 가장 큰 고충은 겨울나기였다. 18년 동안 그 흔한 따뜻한 물로 샤워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4평 남짓한 집에 네 식구가 큰 불평 없이 살았지만 한겨울 ‘얼음장 샤워’ 만큼은 견디기 힘들었다. 여름철이면 집안에 가득 찬 곰팡이와 인분 냄새를 빼기 위해 골목 행인들 눈치 볼 것 없이 문을 활짝 열어 놓아도 아이들은 볼멘소리 하나 하지 않았지만 겨울철 ‘온수의 부재’에는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들은 겨울만 되면 잘 다니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떼를 썼다.

부엌과 같이 붙어 있는 반 평 남짓한 욕실에서 얼음장 같은 물로 세수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학교 4학년이 된 아들은 군복무 시절 따뜻한 물이 잘 나오는 군대가 집보다 안락하다고 말해 부모의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문제는 보일러였다. 쪽방촌의 대부분이 그렇듯 김씨네 보일러도 오래돼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쪽방조차 제대로 난방하지 못할 만큼 보일러 용량이 작아 온수는 불가능했다.

지난 25일 오후 1시, 찜통더위에 진땀을 흘리면서 ‘주방 겸 욕실’에서 온수 이야기를 꺼낸 김씨는 땀을 닦아 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날 기독교 선교단체 ‘사랑의 보일러 나눔’(대표 안용묵)에서 녹슨 보일러를 떼어 내고 고급 보일러를 공짜로 설치해줬기 때문이다.

김씨는 “남편이 얼마 전 횡단보도를 건너다 오토바이에 치여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우리 집에 온수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면 아마 깁스한 다리를 끌고 조기 퇴원해 달려올 것”이라며 “우리 가족에 보일러와 함께 행복을 선물해준 ‘사랑의 보일러 나눔’은 마치 한여름의 산타클로스 같다”고 말했다.

수년 동안 아무 도움 없이 자비로 어려운 가정에 보일러를 수리 및 설치해준 안용묵 선교사는 “보일러가 차가운 저들의 집을 데우듯 예수의 사랑이 냉랭해진 저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안 선교사의 보일러 나누기는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의 구석구석을 찾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글·사진=노석조 기자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