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정은의 파격, 주목되는 북한의 변화
입력 2012-07-26 18:33
섣부른 예단으로 對北 원칙 훼손해선 안돼
북한이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의 부인을 공식적으로 공개했다. 조선중앙TV 등은 25일 밤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 원수가 부인 리설주 동지와 함께 준공식장에 나왔다”고 밝혔다. 이설주는 지난 6일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 때 김정은과 나란히 앉아 관람하는 모습이 다음날 북한 매체에 공개됐다. 8일에는 김일성 주석 18주기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15일 평양 경상유치원 현지지도에 동행한 모습도 잇따라 보도됐다.
북한이 이름까지 거명하며 퍼스트레이디의 존재를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일성 전 주석은 물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도 4명의 아내를 북한 매체에 거의 등장시키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북한 전문가들은 이설주의 공개를 아버지 김 전 위원장의 은둔형 통치 스타일과 다른 김정은식 파격의 시작이라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김정은은 모란봉악단 공연 관람 때도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 미키마우스가 무대에 오르고 미국 우월주의 내용의 할리우드 영화 ‘록키4’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주제곡과 함께 상연된 공연을 지켜본 그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고, 북한 주민들에게 공연을 방영토록 지시했다.
이런 현상이 주목되는 것은 북한의 개혁과 개방으로 연결될 가능성 때문이다. 김정은은 지난 4월 15일 첫 대중 연설에서 “인민의 허리띠를 다시는 졸라매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최측근이었던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 최근 전격 해임된 배경을 놓고도 경제발전을 위해 군부가 주도하던 약탈 경제 구조를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이미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한 ‘6·28방침’을 공표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북한의 개혁과 개방은 우리도 바라는 바이고 격려할 만한 일이다. 북한 주민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할 뿐 아니라 남북 체제의 수렴은 한반도 리스크를 줄이는 길도 된다. 북한 사회가 현대화돼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성장하는 것은 남북 대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김정은의 파격이 본격적인 체제 변화로 이어지리라 단언하기는 어렵다.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완화시키려는 계산된 쇼맨십에 불과할 수 있다. 세습체제를 조속히 안정시키기 위한 임시방편일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전 근대적 세습체제가 개혁과 개방을 수용할 능력이 있을지 미지수다.
따라서 북한 체제의 변화를 섣불리 예단해 바지를 둥둥 걷고 대북 대화에 나서자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지난 4월 13일 북한은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했고, 핵보유국임을 명시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월드컵 평화무드에 젖어있던 2002년 우리는 ‘통 큰’ 김정일 전 위원장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제2연평해전의 쓰라린 경험도 있다. 북한의 변화가 남북 관계 진전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만큼 주시하되, 대북 원칙을 무작정 깨뜨리거나 안보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