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손병호] 만담꾼의 쾌재

입력 2012-07-26 18:32


여의도 앞 한강에 섬이 하나 있었다. 밤마다 그 섬 백사장에서 섬으로 쫓겨온 이들이 모꼬지를 가졌다. 사람은 언제나 구름떼처럼 모였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라 서로 궁둥이 붙이고 같이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워낙 ‘낮은 사람들’이 모였으므로 여의도 높은 분들은 별 관심을 안 뒀다. 어차피 그 사람들은 예전에도 딴 나라 사람들 같았다. 자기 앞가림 못해 섬으로 쫓겨났다고 생각했다. 도와달라고 했지만 쓸데없이 떼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여의도에 얼마나 중요한 일이 많은데 그깟 시덥잖은 일로…”라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모꼬지에 인파가 몰린 것은 한 만담꾼 때문이었다. 그는 ‘시덥잖은 일’을 자청했다. 그이는 원래 약초꾼이었다. 그가 캐낸 약초가 병균을 죽이는 데 효과가 탁월했단다.

만담꾼은 약초를 캐면서 겪은 고생담을 들려줬다. 힘들어도 참아내면 언젠가 낙이 온다는 평범한 얘기였다. 만담이 끝나면 그는 사람들의 등을 두드려줬다. 섬사람들은 난생 처음 받는 위로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눈물을 훔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가 “희망을 가지라”고 북돋워줄 땐 곳곳에서 “얼쑤” 하고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강물이 철썩철썩 모래톱에 부딪히는 소리만 들릴 뿐 온 세상이 만담꾼 얘기에 쏙 빠져든 듯 경건한 고요가 흘렀다. 다만 만수가 졸다가 강물이 철썩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얼쑤” 하는 대신 그만 “철쑤”하고 엉뚱한 추임새를 넣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렇게 이삼 년이 흘렀고 나라에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다. 모든 게 말라 비틀어졌고, 삶은 더 팍팍해졌다. 그럴수록 ‘그 섬’으로 쫓겨나는 이들은 더 많아졌고, 어김없이 만담꾼에 몰렸다. 끝이 안 보이는 가뭄에 여의도부터 ‘그 섬’ 사이에 가득 찼던 강물마저 말라버렸다. 여의도와 ‘그 섬’은 그렇게 기적같이 같은 땅으로 이어졌다. 섬사람들은 감히 넘보지 못할 여의도가 같은 땅으로 연결되자 “모세의 기적 아니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섬사람들은 강바닥을 걸어 여의도로 향했다. 홍해 너머 약속의 땅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했다.

도하 행렬은 여의도를 집어삼킬 위세였다. 그 맨 앞에 만담꾼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새로 이어진 두 땅의 왕으로 추대하자고 했다. 하지만 여의도에는 용상(龍床)을 탐내온 왕자와 공주들이 즐비하지 않던가. 그들이 째려보자, 만담꾼은 “인파에 떠밀려서 일단 온 것이지 아직 뭘 할지 말지는 못 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담집을 냈으니 (왕이) 될 수 있을지 한번 봐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왕자와 공주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래봤자 만담꾼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입만 살아 있다고 일까지 잘하는 건 아니다”고 윽박질렀다. 또 ‘여의도 일’이란 게 약초 캐는 것과는 근본부터 달라 깜냥이 되겠느냐고도 따졌다.

반면 만담꾼을 추종하는 이들은 만담집이 곧 천지개벽을 이뤄 내리라고 믿었다. 온 나라 책방에서 만담집이 동이 날 지경이었다. 상황이 심상찮자 한 공주를 밀고 있는 홍 대감이 “서민을 위하는 척하지만, 약초꾼이 되기 전에 잠깐잠깐씩 서민을 만났지, 지금 주변 사람들은 죄다 성공한 사람 아니냐”고 꼬집었다. 누군가 한마디 거들었다. “인세는요?” 그럴수록 만담꾼의 인기는 더 치솟았다. 그는 아무도 없는 다락방에 혼자 들어가 외쳤다. “처얼∼쑤!”

손병호 정치부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