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룡 목사의 시편] 빈약한 종교 다원주의

입력 2012-07-26 18:13


“모든 종교에는 동일한 하나님께로 가는 구원의 길이 있다.”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다.

만약 모든 종교에 동일한 구원의 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논리적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모든 종교는 각자 표현 양식이 달라도 결국은 동일한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에게 도달한다고 주장한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존 힉(John Hick)이다. 힉은 힌두교, 유대교, 불교, 기독교 등 모든 종교가 동일한 궁극적 실재에 대해 문화적으로 다르게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힉은 하나님의 개념에 대해서 불가지론적 입장을 취한다. 다시 말해 궁극적 실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알 수 없는 존재’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라고 답한다. 그는 말하길 “우리는 실재 자체에 인격적이거나 비인격적이거나 또는 선하거나 악하거나, 목적을 가지고 있거나 목적이 없거나, 심지어 하나이거나 여럿이라고 하는 그 어떤 본질적인 속성도 부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종교 다원주의의 하나님은 어떤 개념이나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합리성과 설득력이 결여돼 있다. 만일 궁극적 실재가 알 수 없는 존재라면 힉은 어떻게 그 알 수 없는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또한 그 알 수 없는 하나님이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설득력 있는 답변이 없다. 그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알 수 없는 존재이며 어떤 개념이나 논리로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해 ‘궁극적’이라는 개념과 ‘실재’라는 개념, 그리고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개념을 적용시켜 설명하고 있다. 그는 개념과 논리의 부적합성을 말하면서도 그것들을 활용해 하나님을 설명한다. 이것은 모순이다.

더욱이 종교 다원주의는 하나님은 논리가 아니라 오직 체험으로만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종교 다원주의자 오강남씨는 궁극적 실재는 “말이나 이론의 영역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체험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그 하나님이 선한지 악한지, 인격체인지 비인격체인지 알 수 없으며 오직 체험으로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종교적 체험과 힌두교의 종교적 체험들이 동일한 종교 체험이며, 둘 다 동일한 하나님에 대한 체험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자신이 흠모하는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줄도 모른 채 단지 체험만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그 체험이 사단에 의한 체험인지, 하나님에 대한 체험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희박하다.

기독교 신앙에는 하나님을 아는 정확한 지식이 중요하다. 또한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신앙 체험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성령 체험 모두 다 소중하다.

(서울 큰나무교회 담임, 기독교 변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