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석 국장기자의 London Eye] 메달을 만드는 숨은 주역 ‘훈련파트너’
입력 2012-07-25 19:03
연초에 나온 ‘페이스메이커’란 한국영화가 있다. 스타선수를 위해 항상 자신을 희생했던 선수가 마지막 경기에서 진정 자신만의 레이스를 펼친 끝에 우승한다는 줄거리다. 설정을 런던올림픽으로 잡은 것도 흥미롭다. 페이스메이커로 나오는 주인공 주만호(김영민 분)는 스타선수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한 뒤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자신을 위해 최후의 레이스를 장식한다.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와 역할은 조금 다르지만 런던올림픽에도 스타선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조연들이 많다. 훈련파트너로 런던 브루넬 대학 대표팀 훈련캠프까지 따라온 선수들이다. 이들은 올림픽 출전선수들이 실전감각을 잃지 않도록 돕는 훈련파트너들이다. 올림픽 선수들이 경기직전까지 페이스를 잃지 않도록 하는 점에선 영화 주인공처럼 페이스메이커인 셈이다.
그들도 한때는 올림픽의 꿈을 품었지만 국내 선발전에서 대표선수들에게 자리를 내준 아픈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다. 태권도의 안새봄(22·삼성에스원)은 올림픽 출전 티켓은 자신이 따놓고 정작 국내 선발전에서 선배 이인종(30·삼성에스원)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내주고도 훈련파트너로 런던까지 온 케이스다.
25일 현재 브루넬 대학에서 훈련 중인 선수는 143명. 그중 45명이 훈련파트너다. 대한체육회가 올림픽을 앞두고 현지에 대표팀 전용 훈련캠프를 차린 것도 처음이지만 이처럼 웬만한 국가의 대표팀 규모를 능가하는 훈련파트너를 대동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의 염원인 ‘10-10(10개 금메달로 종합 10위 달성)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이들은 당장은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지만 다음 올림픽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소중한 기회로 여기는 듯 했다. 복싱 기대주 신종훈(23·인천시청)의 파트너인 김재경(22·인천시청)은 “한편 부럽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하면서 나도 좋은 순간을 맞이해야겠다는 생각한다”고 웃었다.
태권도의 안새봄도 “우선 인종 언니가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돕고 나서 나도 4년 뒤를 위한 새로운 계획을 짤 생각”이라며 비지땀을 흘렸다. 8년만의 금메달에 도전하는 탁구는 선수는 남녀 6명이지만 훈련 파트너는 10명이나 런던에 데려왔다. 다양한 전형의 선수들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이들은 정식 출전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정작 올림픽 무대에서 특별대우는 없다. 입장도 티켓을 끊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런던으로 가는 대한항공 기내 영화에 ‘페이스메이커’란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본 훈련파트너들이 영화 주인공처럼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꿈을 한번쯤 꿨을 법하다.
런던=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