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곽금주] 녹색환경이 학교폭력 줄인다
입력 2012-07-25 18:56
성격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다. 주변의 물리적 환경도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먹고사는 문제가 갈급할 때 환경은 의식주를 위한 단순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삶이 윤택해지면 사람들은 주변을, 환경을 돌아본다.
그러나 이미 숲은 헐벗었고 도시는 빽빽한 아파트 숲으로 바뀌어 버렸다. 푸른 쉼터가 없는 환경은 어느덧 각박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한 사람들을 닮아 버렸다. 각박한 환경은 다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도심생활이 갈수록 삭막해진다. 그런데 도심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야외로 나가면 한결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바로 자연이 주는 효과다. 녹지는 인간의 본능인 공격적 욕구를 낮춰준다.
우리가 종종 경험하는 정신적 피로 상태는 합리적으로 상황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감소시킨다. 대신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공격성이나 폭력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나무나 풀이 보이는 환경에서 거주한 성인 여성들이 그렇지 않은 성인 여성들에 비해 폭력성이나 공격성이 현저히 낮았다. 자연 가까이에 거주한 엄마의 자녀들도 공격성이 다른 아동에 비해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다. 공원과 녹지가 건강과 웰빙에 도움이 되는 것은 실외 활동 빈도가 높아짐에 따라 스트레스가 줄어들며 이러한 활동을 하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고립을 극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힐링이 대세다. 방송에서도 책에서도 ‘아팠니, 나도 이만큼 상처 입었어’라는 고백이 넘쳐난다. 지금껏 치열한 경쟁을 해오느라 다들 아프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 입혔다. 이제 그 아픔과 고립을 어루만져 주려는 것이다. 그만큼 공감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청소년의 힐링은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보도되는 학교폭력과 ‘왕따’ 현상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다. 왜 이렇게까지 되도록 몰랐는지 절망스럽다. 우리 사회는 숨 돌릴 틈 없이 경제성장을 이뤄야 했고, 빈곤을 다음 세대에는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앞만 보며 달려왔다. 지름길로 가도록 학생들을 한 방향으로만 몰아쳐 왔다. 학생들은 지칠 대로 지쳤다. 학교폭력과 왕따는 어찌 보면 이제 더는 못 가겠다는, 아픔을 폭력을 휘두름으로써 풀겠다는 외침이다. 그들을 위한 힐링, 그들을 어루만져 줄 공간이 필요하다. 좁은 교실 공간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갇혀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음미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
실제로 일본 환경청의 한 보고에 따르면 학교폭력과 이지메는 학교 주변의 녹지 환경에 반비례한다. 학교 주변의 녹지가 감소할수록 교내 폭력 발생률이 늘어난다. 녹색이 자라나는 아이들의 정서 안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착안해 일본의 교육 당국은 학교 주변의 녹화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한다. 숲이 있는 학교의 주변 환경은 왕따나 학교폭력을 치유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환경과 우리 사회 청소년의 힐링이 만나는 장을 환경부가 마련했다. ‘아파하는 지구 청소년을 위한 힐링콘서트’가 지난 21일 코엑스에서 개최됐다. 1000여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모여서 환경을 돌아보고 아픔을 같이 토로하는 장이다. 이런 장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국가의 미래는 경제·정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지켜 갈 지금의 청소년 문제에 달려 있다. 바로 이런 기회가 필요하고 중요한 이유다.
곽금주(서울대 교수·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