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得’없는 관광공사 면세점 퇴출
입력 2012-07-25 18:38
달포 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을 찾았다. 터키 이스탄불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현지에서 필자를 안내해줄 터키 관계자들에게 선물할 토산품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국을 상징하는 토산품은 화장품, 향수, 주류, 담배 등 외제 명품들에 가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탑승시간이 촉박해 공항 구석에 있다는 한국관광공사 면세점까지 가는 것을 포기하고 빈손으로 비행기를 탔다.
언제부턴가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국산 토산품 등을 취급하는 관광공사 면세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불평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의 정서가 깃든 토산품 등을 주로 판매하는 관광공사 면세점이 출국장 구석으로 밀려난 때문이다. 반면에 출국객 왕래가 잦은 길목은 어김없이 화장품 등 외제 명품을 진열한 대기업 면세점이 차지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매장 임대기간이 종료되는 내년 2월부터는 인천공항에서 관광공사 면세점을 아예 못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출범 초부터 추진해온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따라 지난 50년 동안 관광산업 진흥의 돈줄 역할을 해온 관광공사 면세점을 퇴출시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관광공사 노조와 학계는 ‘면세재벌 배불리기’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국가가 공익을 위해 재정의 근간인 징세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사업자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면세사업이다. 실제로 관광공사는 면세점 수익으로 제주 중문관광단지와 경주 보문관광단지를 개발하고 해외마케팅에 주력한 결과, 올 연말 사상 처음으로 외래관광객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공공목적을 위한 면세사업의 긍정적 역할은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으로 좌초 위기에 직면했다. 현 정부 출범 직전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의 시장점유율은 57%였으나 4년이 흐른 지금 두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80%로 급등했다. 반면 2007년 점유율 2위였던 관광공사 면세점은 점유율 4%로 급락했다. 정부가 관광공사 면세점에 대해 면세점 매출 ‘톱4’ 품목인 화장품, 향수, 주류, 담배의 판매권을 ‘취급제한’ 조치로 묶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은 반사적으로 매출이 급증했다. 현 정부가 ‘대기업 프렌들리’로 비난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면세점의 국산품 판매비율도 현 정부 출범 후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전체 면세시장에서 국산품 판매비율은 지난해 기준 약 9%(국산담배 포함 땐 18%)에 불과하다. 대기업 면세점들이 약육강식의 시장논리에 의해 수익률이 좋은 해외 명품브랜드 판매에 치중한 결과이다. 대기업 면세점들이 외제 판매에 치중한 결과 지난해 2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해외상품 대금으로 빠져나갔고, 공익을 위한 판매수익금은 고스란히 재벌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국부유출이라고 비판하며 관광공사 면세점의 존치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인천공항 민영화’ 등 힘 있는 기관의 공공기관 선진화는 철회하거나 연기하면서도 면세사업의 공익성을 훼손하면서까지 관광공사 면세점 철수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관광공사는 최근 정부에 관광공사 면세점을 국산품 전문매장으로 전환해 면세시장에서 국산품을 보호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6월에는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중소기업제품 전문매장 오픈식을 갖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만간 관광공사 면세점 자리를 민간에 넘겨주기 위한 국제경쟁입찰 공고를 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밟고 나오자마자 이스탄불의 그랜드바자르(터키 최대의 전통시장)를 옮겨놓은 듯 온갖 공예품들이 진열돼 있는 터키의 면세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외제로 가득한 인천공항 출국장의 면세점과 오버랩돼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필자만의 일일까.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