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이 말하는 체포에서 석방까지… “中서 가혹행위 밝히지 말라고 강요”

입력 2012-07-25 19:26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 혐의로 체포돼 114일 만에 풀려난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49)씨가 25일 조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김씨의 구체적 진술을 확보하고도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며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114일간의 악몽=김씨는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포에서 석방까지의 상황을 털어놨다. 3월 23일 중국에 입국한 김씨는 같은 달 29일 오전 강신삼 유재길씨와 호텔에서 회의를 했다. 이후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다 갑자기 택시를 둘러싼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들에 의해 체포됐다. 강씨와 유씨도 비슷한 시간에 붙잡혔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이상용씨는 단둥 자택에 있다가 검거됐다.

김씨 등 4명은 다음날 오전 단둥 국가안전국으로 옮겨졌다. 이후 4월 28일까지 강압적인 조사가 이뤄졌다. 김씨는 영사 접견을 요구하며 18일 동안 묵비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김씨에게 혐의가 무엇인지 말해주지도 않은 채 한국 내 활동, 북한 민주화 활동 관련 인물, 과거 쓴 글 등을 가리지 않고 캐내려 했다. 김씨는 “26년 전 안기부 조사와 비슷하게 구체적인 혐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실을 털어 놓으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김씨는 석 달여 동안 구치소에서 하루 13시간씩 노역을 했고 ‘팥소 없는 찐빵’ 한 개로 끼니를 때우다 지난 20일 선양 공항에서 주중 한국대사관 직원에게 인계되면서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됐다. 김씨는 일부 언론이 거론한 기획 탈북을 준비하다가 체포됐다는 설은 부인했다.

◇중국 눈치 보는 외교부=김씨는 풀려났지만 가혹행위 논란은 한·중 외교 문제로 비화될 조짐이다. 김씨는 단둥 국가안전국 조사 과정에서 물리적 압박과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김씨의 측근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씨는 함께 체포돼 풀려나지 못하고 있는 중국인 동료 6명이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해 밝히지 못하는 것 같다”며 “김씨가 물고문 등 1980년대 운동권 학생 고문당하듯이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김씨를 4월 28일 구치소로 옮긴 뒤에는 각종 가혹행위를 밝히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귀국할 수 있다며 집요하게 설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는 ‘선(先) 사실 확인, 후(後) 항의’라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만약 사실이라면 항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내에) 김씨 진술에 과장이 섞였다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희(외교부)는 조심스럽다”며 김씨 진술에 회의적 태도도 보였다.

외교부는 지난달 11일 2차 영사면담 때 김씨로부터 가혹행위 진술을 처음 들었다고 밝혔다. 바로 다음날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를 초치하는 등 사실 관계 확인을 요청했지만 중국 측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외교부는 김씨 귀국 이후에도 중국에 재조사를 요구해 놓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