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누나 경혜공주의 재산상속 기록 발견… 죽을 때까지 ‘공주’ 신분 유지 밝혀져

입력 2012-07-24 20:12

조선 초기, 남편(부마) 영양위(寧陽尉) 정종(鄭悰)과 동생 단종(端宗)을 비명에 잃은 경혜공주(敬惠公主·1436∼1473). 그녀는 남편이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한순간에 공주 신분에서 종으로 전락해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경혜공주가 임종 직전 작성한 분재기(分財記·재산 상속에 관한 기록)가 발견돼 공주 신분이 유지됐음이 밝혀졌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관장 이종철)은 최근 해주정씨 대종가로부터 연구 자료로 제공받은 1300여점의 고문서를 정리하던 중 ‘경혜공주지인(敬惠公主之印)’이라는 붉은색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분재기를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김학수 장서각 국학자료연구실장은 “상속 주체가 공주인 조선시대 분재기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며 “특히 인장까지 찍혀 있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분재기는 경혜공주가 숨지기 3일 전인 1473년(성종 4년) 12월 27일(이하 음력) 아들 정미수(鄭眉壽·1455∼1512)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내용을 담았다.

“성화(成化·명나라 헌종의 연호) 9년(1473년) 12월 27일 아들 미수에게 허여(許與)하는 일”로 시작하는 분재기에는 “내가 불행히 병이 들어 유일한 아들인 미수가 아직 혼인도 못했는데, 지금 홀연히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며 “노비(자신을 낮추어 하는 말)는 갑작스러운 사이에 낱낱이 기록해 줄 겨를이 없어 정선방(貞善坊·조선시대 한성부 중부 8방 중 하나)에 있는 하사받은 가사(家舍·집)와 통진(지금의 경기도 김포)에 있는 밭과 땅을 먼저 허락해준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이어 “재주(財主) 모(母) 경혜공주”라는 글씨 밑에 ‘경혜공주지인’ 인장이 찍혔다. 문종의 서녀 경숙옹주(敬淑翁主·1439∼?)의 남편인 반성위(班城尉) 강자순(姜子順) 등 증인 3명의 수결(手決·서명)도 있다.

조선시대 남성은 각종 문서에 서명(사인)을 했다. 여성은 한문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도장을 찍는 게 관행이었으며 주로 검은색이 이용됐다. 하지만 이 분재기에는 공주 신분을 보여주듯 붉은색 도장이 사용됐다. 또 여염집 여성의 경우 이름 대신 ‘누구의 처’라고 새긴 것과 달리 경혜공주는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김 실장은 “이는 경혜공주가 죽을 때까지 당당히 공주 신분을 유지했음을 보여준다”며 “관비가 됐다는 조선후기 일부 문집 기록이나 야사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세조가 경혜공주와 정미수 모자의 경우 연좌제를 적용하지 말라고 명령한 사실이 적혀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