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지자체 10곳 파산 벼랑·美 중산층 붕괴 ‘총체적 위기’

입력 2012-07-24 22:35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가 지난 13일(현지시간) 650억 유로의 긴축안을 발표한 이후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수천명의 시위대가 모여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마드리드에서만 10만명을 포함해 전역에서 80만명이 모여 검은 리본을 단 국기를 들고 “정부가 스페인을 망쳤다”고 외쳤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외곽에 사는 데일 지맨스키(56)는 지게차를 몬다. 연봉 4만 달러를 받으며 ‘괜찮은’ 삶을 살았던 그는 요즘 조합의 건강보험 가입 자격을 얻지 못할 정도로 일거리가 줄었다. 그는 “예전엔 언제든지 일을 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면서 “최근 아파트를 바꿨다”고 씁쓸해했다.

중국 광둥성 광저우(廣州)에서는 전역 군인 500여명이 23일 평균 생계비 수준으로 연금을 올려달라며 집단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집회에 참가한 62세의 한 참전 용사는 “한 달에 받는 연금 510위안(약 9만1000원)으로는 가족 식비에도 턱없이 모자란다”고 토로했다. 집회를 제한하고 있는 중국에서 전역 군인들까지 집단적으로 나선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3·4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23일 금융시장은 또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에서는 소득과 자산가치가 급감하면서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 AP통신은 세계경제가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회복세를 보인 2009년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24일 보도했다.

유로존 재정위기는 중앙정부를 넘어 지방정부로 확산되고 있다. 인구 5만명 이상의 이탈리아 주요도시 10곳이 파산위기에 몰렸다고 이탈리아 일간 라스탐파가 이날 보도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도시는 나폴리와 시칠리아주 팔레르모 등 고질적인 부패와 예산 낭비로 어려움을 겪던 남부 도시는 물론 밀라노와 알렉산드리아 등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북부 도시들도 포함돼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2조 유로에 달하는 국가부채를 감축하기 위해 107개 행정구역을 43개로 줄이고 내년까지 지방정부 예산을 15억 유로 삭감할 계획이다.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지방정부연합 의장은 “예산이 삭감되면 일부 학교들은 여름방학 이후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미국을 지탱하던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0년 6만4232달러였던 가계소득은 10년 만에 6만395달러로 6% 하락했다. 저성장이 계속되는데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자산가치가 한꺼번에 추락했기 때문이다.

중산층 붕괴는 사회 양극화로 이어진다. 미국 상위 1%의 가계소득은 전체 비중의 20%를 차지해 40년 전보다 배 이상 늘었다. AP는 지난해 미국의 빈곤율이 15.7%로 46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고 22일 전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구원투수 역할을 했던 중국도 글로벌 경제위기를 비켜가지 못했다. 중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동기 대비 7.6%를 기록해 2009년 1분기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는 중국 수출 물량의 17%를 차지하는 유럽의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중국의 수요 부진으로 철광석과 콩 수출에 타격을 입었다. 브라질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1.8%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고속성장 덕에 2003년 이후 4000만명이 중산층으로 진입했지만 신용대출에 의한 과소비로 가계소득의 20%가 대출 상환에 쓰인다. 인도는 1분기 성장률이 5.3%에 그쳐 최근 9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공포 그 자체인 시장의 우려를 반영하듯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치솟고 있다. 지난 주말 발렌시아와 무르시아 등 지방정부의 파산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날 스페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장중 7.56%까지 올랐다가 7.49%로 마감했다. 1999년 유로 출범 이후 최고치다.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6.34%를 기록해 구제금융 마지노선인 7%를 위협하고 있다. 스페인의 17개 지방정부가 연말까지 상환해야 하는 금액은 158억 유로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백상진 기자,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