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內금연 직원들 시선 피해 원정 ‘뻐끔’… 애꿎은 피해
입력 2012-07-24 21:37
지난 23일 서울 쌍림동 CJ제일제당센터 앞. 직원 네 명이 회사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목에 걸었던 출입증을 셔츠 주머니에 쑤셔 넣더니 어딘가로 급히 향했다. 직원들은 회사 건물 옆 도로를 건넌 뒤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벽에 몸을 밀착시키고 좌우를 살폈다. 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이들은 서둘러 담배를 꺼내 피우고 곧바로 자리를 떴다. 그곳은 이미 오래 전 흡연장소로 굳어진 듯 여기저기 담배꽁초로 지저분했다.
기업들의 금연운동이 확산되면서 회사 건물을 벗어나 원정흡연을 하는 얌체 직장인들 때문에 주변 상인들과 행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CJ는 지난 1일부터 그룹 본사 및 CJ인재원, CJ제일제당센터와 CJ푸드빌·CJ프레시웨이의 각 매장을 금연빌딩으로 지정했다. 또 사옥 반경 1㎞ 이내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흡연자들은 사옥 근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사원은 “회사의 금연 정책이 좋은 취지이지만 강압적인 부분도 있다”며 “당장 끊기 쉽지 않고, 인사팀이 순찰한다고 해 숨어서 피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정흡연자들 때문에 애꿎은 피해자도 생겨났다. CJ제일제당센터 인근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김모(51)씨는 “최근 가게 앞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늘었다”며 “피우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꽁초를 그냥 버리거나 침을 뱉어놓고 가는 경우가 많아 가게 앞이 아주 지저분하다”고 불평했다.
건물 내 흡연구역이 없는 사옥의 주변 빌딩들도 원정흡연자로 넘쳐난다.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상 연면적 3000㎡(909평) 이상 사무용 건축물 및 2000㎡(606평) 이상 복합건축물의 사무실, 회의장, 강당, 로비는 반드시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게 돼 있다. 그러나 흡연구역 설치는 자율이어서 흡연구역이 없는 빌딩도 많다.
24일 찾은 서울 신문로 LG빌딩 지하 입구 흡연구역에는 LG 직원은 물론 원정 온 금호아시아나와 흥국생명 직원 등 20여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흡연 인원은 줄지 않았다. 이곳에서 만난 한 직원은 “금호아시아나는 우리나라 최초로 금연운동을 시작했고, 모든 직원에게 금연서약서도 받고 있다”며 “간부들의 눈에 띌까봐 원정흡연을 왔다”고 말했다. 인근 에스타워, 고려빌딩의 흡연구역도 사정은 비슷했다.
빌딩 관리인들은 넘쳐나는 흡연자들 때문에 골치라고 했다. 한 빌딩의 관리인은 “우리 회사 직원들을 위해 흡연구역을 만들었는데 타사 직원들이 수시로 담배를 피우러 온다”며 “무조건 안 된다고 해버리니 흡연구역이 있는 빌딩으로 몰리고, 결국 청소 업무도 늘었다”고 하소연했다.
광화문 근처 거리에서 만난 시민 김성환(33)씨는 “신문로를 지나다 보면 사원들이 건물 밖에서 담배연기를 뿜어내 보행자들에게 간접흡연의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식의 금연이라면 차라리 건물 안에 흡연구역을 만드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