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容量 부족 사회

입력 2012-07-24 18:45


23일 이른 아침 집 앞 2차선 도로에서 출근길 차량들이 주춤거리고 있었다. 도로 양쪽에 서 있는 전신주 사이의 고압전선이 길을 가로질러 지상 1m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축 처져 있었던 탓이다.

택시와 승용차들이 길 중앙보다는 전선이 다소 덜 처진 바깥쪽으로 운행하다 보니 늘어선 차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갑자기 SUV 차량 한 대가 길 가운데를 달린다 싶더니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선이 차량에 걸리면서 차 지붕에 덧댄 알루미늄 섀시가 떨어져 나갔다. 다행히 전선은 잘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랬으면 전기 스파크가 생기면서 큰 피해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베이징에 큰비가 지나간 이틀 뒤 모습이다.

‘7·21 수해’로 베이징의 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언론은 중국공산당 정부가 1951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대 폭우였다고 강조하고 있다. ‘터다바오위(特大暴雨)’라는 표현도 쓴다.

하지만 강우량만 탓할 일은 아니다. 이달 초 취임한 베이징시 서기 궈진룽(郭金龍)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아니다. 이번 수해는 베이징의 인프라가 비대해진 도시에 얼마나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지 훤히 드러낸 것일 뿐이다.

베이징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화려한 외관에 대비되는 허술한 내면은 쉽게 발견된다. 비가 조금만 내려도 빗물이 도로로 역류하는 현상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강수량이 적다는 이유로 하수처리 용량을 턱없이 부족하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베이징은 연평균 강수량 600∼800㎜ 정도로 원래 건조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비 오는 날이 빈번해지고 강우량도 많아졌다. 기후는 바뀌고 있지만 보완책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베이징시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최근 시내 도로의 배수 용량을 높이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게 하루 이틀에 될 일은 아니라고.

비슷한 현상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네티즌은 급증하고 있지만 인터넷선 용량은 턱없이 부족한 것도 그중 하나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대형 통신업체의 2메가바이트짜리 혹은 군소업체의 4메가바이트짜리 인터넷 둘 중 하나를 써야 한다. 군소업체의 4메가바이트짜리는 용량은 상대적으로 크지만 불안정해서 접속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속도도 빠르고 안정적인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는지 알아봤더니 광케이블이 깔려있지 않아서 도리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서비스가 조금이라도 나은 통신회사와 개인별로 계약하는 건 불가능하다. 통신회사별로 담당 구역을 나눠놓고 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여건에서 인터넷이 느린 데다 갑자기 연결이 안 되기까지 한다면? 그러나 속을 태워봤자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닌 상황이다.

베이징의 도로도 ‘용량’ 부족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다. 요일별 차량 5부제를 강제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교통 정체는 종잡을 수 없다. 더욱이 5부제가 풀리는 토·일요일이면 평일보다 길이 더 막히는 현상도 나타난다.

도로 확충보다 차량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차량 번호판 추첨제를 도입하는 바람에 현재로서는 언제쯤 차를 갖고 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베이징은 지금 빠르게 바뀌고 있다.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다. 지금 노출되고 있는 갖가지 문제들은 이러한 과도기에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커진 몸집을 추스를 수 있을 때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듯하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