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이석] ‘危害의 원칙’과 경제민주화
입력 2012-07-24 18:46
조숙한 천재 밀(J S Mill)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위해의 원칙(no harm principle)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위해의 원칙이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자신의 신체와 재산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남으로부터 전혀 간섭을 받지 않고 완전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런 위해의 원칙을 어기는 사례로는 경제학에서 외부효과(external effect)로 부르는 것이 있다. 만약 갑의 공장에서 신발을 만들면서 매연을 발생시키고 이 매연이 다른 사람들의 세탁물을 더럽힌다고 해보자. 신발 생산에 따른 이런 세탁물 오염효과를 부정적인 외부효과라고 부른다. 갑이 이 피해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다면 신발공장의 가동은 위해의 원칙을 어긴 것이 된다. 그 피해가 불특정 다수에게 미치고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거나 보상을 협상하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갈 때에는, 신발공장에 대해 세금을 물리거나 오염배출 권리를 사게 하는 정책들이 채택된다. 그 돈은 피해를 본 사람들을 위해 지출된다.
이와는 다른 경우로 위의 매연 발생과 구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갑이 A라는 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을이 같은 업종의 가게 B를 근처에 여는 것은 을의 자유일까, 아니면 갑의 가게의 매출을 줄이는 ‘위해’를 끼친 것이므로 허용되지 말아야 할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을의 행동이 갑의 소득에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을이 자신의 생각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까지 박탈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을의 시장진입을 제지한다면 이는 오히려 갑이 을의 자유에 위해를 가한 것일 수 있다. 이렇게 을의 행위를 제지하는 것은 시장진입을 막는 경쟁제한 성격을 가지며, 갑에게 기득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을로부터 구매했을 소비자들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의사와는 달리 갑으로부터 구매하지 않을 수 없게 강제된다.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위해를 가했다고 볼 수 없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을의 시장진입과 같은 효과를 두고 금전적 외부효과(pecuniary external effect)라고 해서 앞의 매연의 경우와 구별하여 위해를 가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가끔씩 사람들이 을의 시장진입이 갑에게 위해를 가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어 아예 용어를 따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가끔 소위 전문가라는 분들도 오해를 하곤 한다.
만약 갑이 소규모 공장이었고, 을이 대규모 공장이었다면 우리의 결론이 달라질까? 가끔씩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된 진입은 ‘공정한 경쟁’에서 벗어나므로 이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접한다. 마차를 대신하는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무수히 많은 소규모 자동차 제작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포드가 대자본을 투입한 대량생산체제를 도입하여 노동자들도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모델 T를 만들자 상당히 많은 소규모 자동차 제작소들은 문을 닫았다. 모델 T 덕분에 귀족들이나 타고 다니던 마차의 현대판인 자동차를 일반 대중들도 몰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일반대중이 모델 T에 만족한 덕분에 포드는 거대한 부를 이루었다.
포드가 이런 부를 이루는 과정에서 포드가 ‘위해의 원칙’을 어겼을까, 혹은 공정하지 못한 경쟁을 하였던 것일까? 시장경제 속의 평범한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정책이 포드와 같은 사람의 출현과 그의 제품에 만족한 무수한 소비자들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만약 소비자(수요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사업들에 너무 많은 사업자들이 있어서 이들의 삶이 어렵다면 이 업종으로부터 퇴출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들의 수를 그대로 둔 채 다른 이의 시장진입을 막는다고 이들의 삶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硏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