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인문학] 냄비 땜장이에서 영국 최고의 크리스천 작가가 된 존 버니언 (下)

입력 2012-07-23 19:42


두번째 구금때 ‘천로역정’ … 딱딱한 신앙 계도서 형식 벗어

찰스 2세의 신앙 자유령 철회로 비국교도의 설교행위는 다시 불법이 됐고 1675년 3월 존 버니언은 불법 설교로 다시 구금됐다. 두 번째 구금은 6개월로 길지 않았다. 버니언이 감옥에서 풀려 나오게 된 것은 퀘이커 교도들의 도움이 컸다. 국왕이 사면 대상자 리스트를 제출하라고 했을 때 퀘이커 교도들이 버니언의 이름도 함께 냈기 때문이다. 버니언이 처음 설교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 퀘이커 교도들과 신랄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으나 그들의 도움을 받고 풀려난 것이었다.

두 번째 구금 기간 동안 버니언은 ‘천로역정’을 완성했다. 그는 첫 번째 구금 때부터 이 작품을 구상하고 써 왔다. 작품의 밑바닥에는 버니언의 자서전적 요소가 짙게 깔려 있다. 천로역정은 그의 영적 자서전인 ‘죄수 괴인에게 넘치는 은혜’의 문학적 알레고리라고도 할 수 있다.

‘죄수 괴인에게 넘치는 은혜’에서 벽에 난 좁은 틈을 통과하기 위해 애쓰던 존 버니언의 모습은 무거운 짐을 진 크리스천이 통과하기 위해 애쓰던 ‘좁은 문’으로 나타난다. 버니언 자신의 ‘좌절’은 ‘다우팅 성(의심의 성)’에 사는 ‘디스페어(절망)’라는 이름을 가진 거인 성주로 은유된다. 이처럼 천로역정은 존 버니언이 겪은 사건과 인물, 그의 심리적 상태를 은유로 나타내고 있다.

천로역정은 작자의 꿈이라는 형식을 빌리고 있다. 플롯은 단순하다. 주인공 크리스천이 한 권의 책, 즉 성경을 읽고 자신이 지고 있던 큰 짐이 죄라는 것을 깨닫고 그가 살았던 마을이 하나님의 손에 심판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크리스천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자신의 괴로움을 털어 놓고 멸망할 도시를 떠나 도망가자고 권한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은 그의 권고를 비웃고 결국 혼자 피난을 떠났지만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때 이벤젤리스트(전도자)가 나타나 ‘좁은 문’을 지나 ‘밝은 빛’이 보이는 곳을 가리키며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일러준다.

그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이 있다는 그곳을 향해 순례의 길을 떠난다. 그러나 순례의 길에는 많은 유혹과 위험이 기다린다. 그는 ‘낙담의 늪’, ‘좁은 문’, ‘겸손의 계곡’, ‘죽음의 계곡’, ‘허영의 시장’ 등 여러 지역을 거치며 유혹과 시험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옵스티니트(옹고집), 플라이볼(유약함), 굿윌(선의), 페이스풀(신실) 등 그를 방해하거나 도와주는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악한들을 물리치고 선한 이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크리스천은 ‘천상의 도시’에 입성한다.

천로역정에 등장하는 인물과 괴물(악마), 지명 등을 보면 그것은 모두 신앙과 관련된 덕목이나 악덕, 유혹과 위험을 의인화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발한 작명과 풍부한 상상력이 담긴 내용으로 구성된 천로역정은 당대 기독교인이 어떤 신앙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일깨워 주었다. 고리타분하고도 딱딱한 신앙 계도서의 틀을 벗어난 이 책을 읽고 당대 기독교인들은 환호했을 것이다.

특히 겸손의 계곡에서 크리스천과 아폴리온이 싸우는 장면은 마치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은 짜릿함마저 느꼈을 것이다. 천로역정은 위작들이 판을 칠 정도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버니언은 천로역정의 2부도 썼다. 2부는 1부에서 ‘파멸의 도시’에 남겨진 아내 크리스티나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고난 끝에 천상의 도시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부는 1678년, 2부는 6년 뒤인 1684년에 출간됐다.

흥미진진한 종교 소설인 천로역정은 성경과 함께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전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천로역정은 한국에 개신교가 도입되던 무렵부터 일찍이 번역돼 소개됐다. 천로역정은 1895년 선교사 제임스 스카스 게일(James Scarth Gale)이 번역했는데 이는 한국 최초의 근대 번역 소설로 기록됐다. 이 번역본에는 김준근의 판화가 실려 있는데 판화에 나타난 등장인물은 한복과 갓을 쓰고 있으며, 천사의 모습은 한국 고전의 선녀를 연상케 한다.

어쩌면 두 번째 구금기간 동안 버니언이 천로역정의 완성에 몰두한 것은 구금의 고통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구금의 고통을 잊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자신도 이 작품을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썼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맨 처음 펜을 들었을 때, 나는 이런 모양의 작은 책을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렇다. 실은 나는 다른 어떤 책을 쓰고 있었는데 그것을 거의 다 탈고하게 되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이 책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것을 썼는지는 모른다. 내 이웃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쓴 것도 아니다. 나는 자기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서 이 글을 썼다.”

존 버니언은 석방됐지만 또다시 구금될까 항상 두려워했다. 언제 석방될지 모른 채 12년 동안 구금됐고 구금 기간 동안 항상 사형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석방 후에도 설교와 여러 권의 저서로 이미 유명인사가 돼 체포 위험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구속당할 위험은 항상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교구들을 방문할 때 역마차 마부처럼 옷을 입고 손에 채찍을 들고 위장해 다녔다.

1685년 2월 6일 찰스 2세가 죽고 그의 동생 제임스 2세가 왕위를 이어 받았다. 제임스 2세는 즉위 후 가톨릭을 부활하고 전제정치를 강화했다. 제임스 2세가 권좌에 오른 직후 버니언은 자신의 전 재산을 아내에게 양도했다. 그것은 다시 수감되거나 재산몰수형을 받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임스 2세는 스코틀랜드를 다스릴 때 비국교도들을 가혹하게 억압했지만 뜻밖에도 종교 양심의 자유 정책을 펼쳤다. 가톨릭교도였던 그는 국교도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가톨릭의 세력을 키우기 위한 일환으로 그런 정책을 편 것이었다. 덕분에 존 버니언과 같은 비국교도 개신교도들은 상대적으로 평화를 누렸다. 버니언은 제임스 2세 재위 기간 동안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는 제임스 2세 재위 동안에 6권의 책을 새로 펴냈다. 그는 생애 동안 천로역정 이외에도 ‘배드맨 씨의 생애와 죽음’, ‘거룩한 전쟁’ 등 총 60권이 넘는 책을 집필했다. 책의 집필은 그의 또 다른 설교 활동이었지만 설교활동과 과도한 집필은 그의 건강을 해쳤다. 그의 책을 출판한 찰스 도우는 “그는 여섯 권을 집필한 뒤에 다한증에 걸렸으며, 그러고는 몇 주 뒤에 숨을 거두었다”고 증언했다.

버니언은 다한증으로 몸이 많이 쇠약해 진 상태에서도 이웃돕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레딩에 사는 한 청년이 찾아와 아버지의 분노를 누그려 달라고 도움을 청하자 그는 레딩으로 가서 청년의 아버지를 간곡히 설득해 둘 사이를 화해시켰다.

레딩에서 일을 끝나고 그가 다시 말을 타고 런던으로 돌아가려 할 때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그는 심한 비를 맞으며 늦은 시각에 런던으로 돌아왔다.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오한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증세는 갈수록 더 심해졌다. 결국 그는 침대에 누운 지 열흘 뒤인 1688년 8월 31일, 예순의 나이로 사망했다.

현재 버니언이 살던 집에는 그가 사용하던 ‘성경’과 함께 ‘순교자 열전’이 놓여 있다. 그가 크리스천으로서 시험과 유혹을 이겨내고 천상의 도시에 입성하기 위해 항상 순교자의 자세로 살고자 했다는 것을 증언해 주고 있다.

이동희(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