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조국, 시리아 출신 한국인 만나보니… 도청 두려움 “거기 비 와?” 전쟁대신 비 소식만
입력 2012-07-23 22:15
“거기 비 와? 조금씩?”
“아니, 아냐.”
전화기 너머 어둡고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그들의 대화는 늘 그랬다. 비 소식만 지겹도록 물었다. 비는 곧 총과 헬리콥터 소리를 뜻하는 말이었다.
진실은 위험한 나라, 그래서 은어(隱語)로 말해야 하는 나라 시리아. 41년간 아버지와 아들의 독재, 이로 인한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으로 16개월간 1만9000여명이 사망한 피와 눈물의 나라. 한국에 있는 아브스(45)씨는 도청되고 있는 시리아의 가족들에게 전쟁 대신 비 소식을 묻는다.
13년 전 서울대 유학생으로 한국에 온 그는 2007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무역업을 하고, 아내는 서울 이태원에서 중동 과자와 빵을 판매하는 베이커리를 운영한다. 지난 21일 이태원에서 아브스씨를 만났다.
“끝내야 할 전쟁이죠. 그런데 누군가 피를 흘리더라도 꼭 싸워야 할 전쟁이라는 걸 시리아 사람들은 알아요. 이대로는 지속될 수 없는 나라니까. 시리아 사람들도 자유를 알아요. 알지만 가질 수 없는 게 서글픈 것이죠.”
자유. 공기처럼 들이마시다 없어지면 질식하고 마는 자유의 부재는 어떤 것일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한밤에 경찰이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자칫하면 엄마가 죽을 수도 있다. 공무원이 어디 갔다 왔느냐며 여권을 보자고 한다. 목숨이 걸린 듯 바들바들 떨린다.
시리아 한인 유학생으로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다 지난해 9월 빠져나온 부산외대 권미리내(05학번·여)씨는 시리아의 통제를 이렇게 기억했다.
“평범한 이웃 아저씨였는데, 사실은 정보경찰이라는 소문을 뒤늦게 전해 들었어요. 누가 무슨 말을 듣고 누구에게 일러바칠지 모르니까 아사드 정부에 대해선 친해도 속을 터놓을 수 없는 사회예요. 친정부 시위를 하자는 문자메시지를 단체로 받은 적 있었어요. 공교롭게도 그날 대학은 휴강을 하더라고요. 친정부 시위를 암암리에 부추기는 거죠.”
다마스쿠스에 살고 있는 아브스씨의 친구도 얼마 전 종아리에 총을 맞았다.
“병원에선 수술을 못 받았어요. 치료해주면 (정부가) 잡아가니까.”
고국의 전쟁을 멀리서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 때문에 그의 마음이 무겁지 않을까 했는데, 아브스씨는 오히려 더 강해진 것처럼 보였다.
“리비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이 오면서 카다피 정권이 끝났지만, 시리아는 외부 군대가 개입을 안 해요. 훨씬 힘들죠. 그래도 시리아인은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싸워요. 어린 학생들이 학교 벽에 ‘자유를 원한다’고 썼다가 잡혀가 손톱이 뽑히는 벌을 받았어요. 이 사건이 확산돼 여기까지 왔어요. 유럽의 역사에서 프랑스 혁명이 중요하듯 시리아 혁명도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 될 거예요.”
살구꽃의 나라 시리아는 인류가 거주한 가장 오래된 땅 중 하나다. 5000년 전 가나안인이 정착하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도시 다마스쿠스의 역사가 시작됐다. 유럽과 중동, 아시아의 한가운데 자리한 지정학적 위치 탓에 전쟁이 줄곧 이어진 곳이기도 하다.
“한 프랑스 철학자가 이렇게 말했어요. 인간에게 고향은 두 곳인데 하나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곳, 다른 하나는 시리아래요. 또 한 여행객이 제게 말하기를 시리아에선 할아버지의 냄새가 난대요. 시리아는 인간의 고향이죠.”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는 이태원의 골목 안 작은 가게 의자에 앉아 그는 인간의 고향을 생각하고 혁명을 꿈꾸고 있었다. 고국을 둘러싼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를 이야기할 때 그는 분노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시리아 제재안을 부결시킨 것은 “시리아 사람의 피로 장사하는 짓”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시리아에 무기를 수출하고 타르투스항에 자국 해군 기지를 두고 있다. 중국도 중동에 대한 미국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계산이다. 그는 결국 반군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길 거라 했다.
“1년 넘게 군인들 휴가도 보내지 않고 TV도 못 보게 하죠. 세상 돌아가는 걸 조금이라도 안다 싶으면 죽이니까 정부군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어요. 다마스쿠스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부유층이 많은데도, 거기 시민들 인식도 바뀌고 있고요.”
아브스씨는 고국의 가족들에게 불이익이 생길 것을 염려해 성을 뺀 이름만 밝혔다. 그는 시리아인들에게 총소리는 이제 익숙하다고 말했다. 장마철의 슬픈 빗소리처럼.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