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여름날 저녁의 농가

입력 2012-07-23 18:37


무더위와 장마철에는 좀 쉬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것이 계절의 순리에 따르는 길이자 다가오는 가을을 준비하는 지혜가 아닐까. 이 시는 여름날 저녁의 농가 풍정을 그린 것인데,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향수에 젖게 한다.

요즘 시골에 가면 돌담이나 텃밭 귀퉁이에 박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박꽃은 은은하고 순박한 풍정이 만만찮다. 박꽃은 해질녘에 피어나 다음날 오전에 지는데, 첫 구에서 박꽃이 필 무렵의 농촌 정취를 잘 그려내고 있다.

또 그 시간은 만뢰가 잦아들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가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존재감을 크게 느끼게 한다. 저녁 어스름에 시골길을 산책하며 사색에 잠겨 보는 것은 여름철에 맛볼 수 있는 별미 중 하나가 아닐까.

농사일을 마치고 꼴을 한 짐 해서 소 등에 메우고, 뒤에서 고삐를 잡고 가면 소가 절로 제 집을 찾아 간다. 둘째 행에서 묘사한 내용이다. 오막살이(棚戶)에서 관솔불을 피워 놓고 온가족이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밤이 이슥해진다.

장자(莊子)는 “비어있는 방에 햇살이 비친다(虛室生白)”라고 말했다. 조선 중기의 문덕교(文德敎·1551∼1611)는 건강(養生)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은 ‘마음을 맑게 하고 일을 줄이며 조용히 지내는 것(淸心省事靜中居)’이라고 읊었다. 당장 눈앞을 보면 해야 할 일로 넘쳐나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 멀리 가려고(任重道遠) 한다면, 이 여름철에는 생사(省事), 즉 일을 줄이고, 생백(生白), 즉 마음에 지혜가 자라나게 하여, 시야를 크게 하고 다시 먼 길을 준비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