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총기소유 자유 vs 규제

입력 2012-07-23 18:36

20년쯤 전에 책을 한권 번역한 적이 있다.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두 번째 6·25가 일어난다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현역 군인인 미 육사 영문학 교관이 쓴 소설의 원제는 북한군의 남침을 의미하는 미군 암호 ‘북위 38도 양키(38 North Yankee)’.

그런데 번역하면서 멈칫한 부분이 있었다. 남한의 평범한 한 시골 농부가 라이플을 꺼내들고 북한군에 맞서는 대목이었다. 당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인 농부라면 자신의 소총을 들고 침략자와 싸운다는 상황 설정이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총기 소유가 엄격히 금지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평범한 농부가 엽총도 아닌 소총을 지니고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총기 소유는 거의 천부(天賦)의 권리다. 연방수정헌법 2조는 ‘규율을 갖춘 민병대는 자유 주(州)의 안전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 독립 후 연방제가 채택되면서 반연방주의자들이 반대급부로 국민의 저항권과 총기 소유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얻어낸 결과다. 미국의 각 주가 비록 지금은 연방의 품에 들어가지만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무력으로 저항하고, 탈퇴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총기 소유 자유를 두고 인디언의 공격 및 서부개척시대 치안 공급이 부족하던 때 무법자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연방제, 또는 중앙정부에 대한 회의가 그 뿌리다. 주위의 모든 위협, 특히 정부권력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총으로 무장해야 하며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그러나 이 같은 총기 소지 자유 옹호론도 걸핏하면 일어나는 총기난사 사건으로 인해 수그러들곤 한다. 며칠 전만 해도 콜로라도주 오로라시의 한 극장에서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미국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느슨한 총기 소지를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또 한번 높아졌지만 이번에도 그러다 말 거라는 분석이 많다.

전미총기협회(NRA) 같은 막강한 압력단체의 영향력이 여전히 높은 데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미국인들이 갈수록 더 늘고 있기 때문이다. 무고한 총기 희생자가 계속 발생하는데도 많은 미국인들이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이유가 혹시 현재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독재국가로 가는 것을 막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국민들의 총기 소유 허용이라는 주장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