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병효] 속 비운 주목들의 외침
입력 2012-07-23 18:45
남한에서 가장 오지라는 태백산 밑에 인생의 석양길 둥지를 튼 친구를 보러 한여름에 강원도 태백에 갔다. 도착하자마자 태백산보다 더 높다는 인근 함백산으로 향했다. 함백산 정상에는 오래된 주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남한의 주목 군락지로는 소백산이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40대 말에 그곳에 올랐었지만 늙은 주목보다는 한창 피어 오른 철쭉에 눈이 팔려서 주목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나이에 따라 보이는 나무도 다른 모양이다.
태백산도 주목으로 많이 알려진 곳으로 그들을 만나는 것이 거기에 가는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새천년 새날 천제단에 새로 뜨는 태양을 보고자 태백산을 처음 올랐었다. 그때 마주쳤던 밤새 내린 눈에 덮여 어린 사슴의 뿔처럼 아름답게 보였던 주목들의 가지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아마 금방 사라질 흰 눈과 수백년을 살아온 주목 간의 조화가 주는 인상이 강렬해서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여름철엔 그처럼 아름다운 주목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죽은 몸에서 새로운 가지를 낳는 회춘의 모습이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산다’는 주목은 기껏해야 백년의 수명을 가진 인간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죽어 천년 산다는 것이 맘에 들어 화장을 한 내 육신의 재 위에 주목을 심기로 한 결심을 다시 굳혔다. 주목은 열매를 제외하고는 독성이 강하고 서양에서는 슬픔을 상징한다니 수목장용으로 적합한 셈이다. 사후의 생을 믿건 안 믿건 현세의 모든 관계에서 떠나간다는 것은 불안하고 서운하고 슬프기도 할 터이니 지상과의 인연을 주목이 이어줄 것으로 생각하면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해서이다.
주목을 볼 때마다 감탄하는 것은 그 붉은 색이 돋는 몸통과 가지의 고상하고 깨끗함과 더불어 오래될수록 속이 모두 비어간다는 사실이다. 젊어서도 속이 비었나 보니 그렇지 않았다. 나이 들수록 때 묻은 껍질을 벗어버리고 부패한 속도 썩혀서 비어내고 있었다.
인간들도 나이 들수록 쌓이는 허위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마음속의 욕심도 썩혀서 버린다면 주목처럼 깨끗하고 오래 그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태백산 천제단 아래 오래된 주목들이 하늘을 향해 가지를 벌리고 있는 모습이 다양하였다. 온몸을 비틀어 하늘을 향하는 놈도 있는데 하늘에 뭔가 호소하려는 몸짓인가? 무언의 무슨 외침인가?
미국 내 최초의 본격적인 한국전통정원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LA카운티 수목원의 슐호프 수목원장과 같이 두 달 전 창덕궁 후원에 갔을 때도 오래된 주목을 만났다. 그로부터 주목을 영어로 ‘yew tree’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 영국에 살 때 보니 주목으로 만든 가구들을 최고급으로 치고 있었다. 불그스레한 갈색으로 대개 고급 책상용 등으로 쓰이고 있었다.
좋은 가구들은 세월이 많이 흐를수록 그 진가를 보여주는데 과연 사람들도 그런가. 얼마 전 새누리당의 한 간부가 박근혜 경선후보 곁에 55세 이상은 얼씬거리지 말라고 했는데 주목 같이 잘 늙고 다시 새롭게 태어난 나이 든 정치인들이 별로 없음을 고백한 것일 터이다.
우리 정치인들도 이제 주목처럼 허위의 껍질을 벗고 마음속 부패를 썩혀 버려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수백년간 한민족의 성쇠를 지켜본 태백산 천제단의 속 비운 주목들도 하늘을 향해 그렇게 외치고 기원하고 있지 않을까.
최병효(외교협회 정책위원·전 LA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