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두 가지 의문

입력 2012-07-23 18:00


누가복음 15장 3∼7절

누가복음 15장에 잃어버린 양과 동전, 아들에 관한 비유가 나옵니다. 잃어버린 양은 한눈팔다가 위태한 지경에 빠진 어린 신자입니다. 이런 경우 목자는 양을 찾아 나섰습니다. 잃어버린 동전은 누군가 찾아주지 않으면 주님께 돌아올 수 없는 마가복음 2장 1∼11절에 나오는 중풍 병자와 같은 신자입니다.

잃어버린 아들(탕자)은 세상이 좋아 집을 나간 고멜 같은 사람입니다. 고멜을 찾아 나선 남편 호세아는 마음을 잡지 못한 아내를 온전히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구약의 호세아와 달리 신약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 나서지 않고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립니다. 그 인내의 사랑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에서 두 가지 의문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너희 중에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눅 15:4)라는 말씀입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방치한 채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일이 과연 현명한 목자의 판단인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몇 해 전 제가 어느 목자에게 이 문제를 질문했더니 그는 양이란 목자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설명해줬습니다. 하지만 그 답변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판에 뒀기 때문입니다. 양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리나 맹수의 위협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습니다. 또 도적에게도 노출돼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의미가 담긴 비유일까요? 이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교회는 물량주의가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수상한 ‘라이언 일병구하기’란 영화가 있습니다. 4형제가 2차대전에 참전했는데 그중 3명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형제들의 어머니에게 전해집니다. 막내 라이언 일병은 생사가 불분명합니다. 상부에서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한 부대가 구성됩니다. 결국 라이언 일병은 구했지만 부대원은 모두 전사하고 맙니다. 우리 시각으로는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한 명을 구하고 여러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지 의문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의 힘입니다. 미국의 정신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미국인을 쉽게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미국은 한 명을 구하기 위해 군함과 사단 병력을 움직이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1명의 선교사가 나가 평생 5명 전도하는 목회를 하고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바로 증거했다면 그는 승리한 목회자입니다. 먼 훗날 그를 재평가할 것입니다. 교회가 벼랑 끝에 있는 사람,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 소외된 사람에게 다가갈 때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룰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하나는 양을 찾은 뒤 잔치를 벌였다는 점입니다. 한 마리 양을 찾아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을 베풀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해가 어려운 비유 속의 또 하나의 메시지는 교회는 상업주의가 아니란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데 집중해야 맞습니다. 교회가 세상 가치와 방법으로 흐르면 안 됩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귀히 여기고 때론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사람을 모으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 영혼, 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치중할 때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실 것입니다.

심상효 목사(대전성지교회)